책들 
이은봉(1953~  )
읽어야지, 하면서도 쌓아두기만 한 책들, 버려두기만 한 책들, 책들도 군중 속의 고독으로 치를 떨겠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책들,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책들, 참 외롭겠다 참 슬프겠다 참 아프겠다

저 책들, 너무 서러워 갈피에 절망을 숨기고 있다 행간에 한을 감추고 있다 가슴에 칼을 품고 있다

요즈음 누가 책을 읽나 인터넷이 훨씬 더 재미있는데, SNS가 훨씬 더 재미있는데, 그러니 너는 칼을 맞아도 좋다

아이고, 나여 내 영혼이여 피여 책이여 나도 곧 쓰레기더미로 버려지리라 폐지더미로 던져지리라.

[시평]
사람들은 흔히 사들인 책들을 전부 읽지를 못한다.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읽지 못하고 그저 꽂아두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래서 그 책들, 우두커니 책꽂이에 꽂혀진 채 버려져 있는 경우가 없지 않아 있다.

그런 책들을 보면, 왠지 군중 속의 고독을 보는 듯하다. 제목만이 눈에 익은 그 책들, 뭇 책 가운데 꽂혀 있는 모습, 왠지 그 책이 외롭고, 슬프고, 또 아프게 느껴진다. 사람들로부터 읽힌다는 선택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실은 외롭고, 슬프고, 아픈 것은 책이 아니라, 그 책을 바라보는 우리들이다. 읽는다, 읽는다 하며 읽지를 못했으므로, 그 책을 그저 버려둔 우리, 책이 지닌 진정한 가치를 폐기시킨 우리가 슬프고 아픈 것이다.

우리의 가치가 소진되는 날, 우리도 쓰레기더미로, 또는 폐지더미로 외롭고 슬프게 던져지리라. 읽히지 않은 저 책들 마냥. 우리에 의하여 읽히지 않은 책들에서, 아 아 우리는 또 다른 우리를 이렇게 만나고 있구나.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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