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뭐가 뭔지 오리무중이던 ‘종말고고도지역방어(THAAD/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체계의 배치 문제에 있어 정부가 좀 늦은 감은 있지만 주권국가로서의 중심을 잡아가는 것 같다. 중국을 겨냥해 우리 당국자들이 ‘주변국의 안보문제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반발하는가 하면 ‘사드의 배치 문제는 주권적 문제’라고 천명하기도 했다. 당연한 얘기다. 이제야 한참된 체증이 시원하게 내려가는 것 같다.

사실 사드 문제는 모호할 것도 없고 숨길 것도 없었다. 애초부터 미국이나 중국이 우리 뱃속을 유리알처럼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런 것을 ‘전략적 모호성’이라며 우물쭈물 하는 바람에 우리의 안보에 대한 의지만을 괜히 얕잡혀 보인 느낌이다. ‘이것인가 저것인가 분명히 밝히지 않았으므로 미국이나 중국은 한국이 밀면 밀리고 흔들면 흔들릴 수도 있다고 착각했을 수 있다.

그러니까 애초부터 지금 당당하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사드는 주변국이 간섭할 수 없는 주권국가의 안보 문제’라는 것을 못 박고 갔어야 했다는 얘기다. 그랬더라면 우리가 우물쭈물 하는 것에 대한 미국의 불평이나 미국이 사드를 공론화하자 본격적으로 한국을 향해 반발하고 덤벼드는 중국의 기세가 지금처럼 기고만장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 입장을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은 핵무장을 가속화하면서 핵과 핵을 운반하는 미사일 기술을 고도화해나가고 있는 것에 대해 중국도 걱정이 많다. 이런 상황을 빤히 아는 중국이 그 같은 우리의 생존에 치명적인 공격 무기를 막을 ‘방패(shield)’를 한국이 준비하는 것에 대해 시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만약 중국이 북의 대량 살상무기 전체를 폐기하게 만들어 준다 해도 주권국가의 안보에 간섭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따라서 ‘사드’가 우리 안보에 결정적인 무기가 돼주는 것이라면 중국이 어떤 식으로 반대하더라도 배치를 결행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미국에 봉 잡히거나 바가지를 써서는 안 된다.  

‘사드’를 반대하는 중국은 그들이 야심적으로 설립을 추진하는 ‘아시아 인프라 투자 은행(AIIB/Asian Infrastruccture Investment Bank)’에 한국이 참여할 것을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 ‘사드’ 배치는 못하게 하면서 ‘AIIB’에는 가입하라고 난리다. 강대국들은 대저 이렇게 자국의 이익 앞에서 제 멋대로, 맘대로 행동한다. 그렇기도 하지만 기실 일본이 참여를 유보한 입장에서 한국 말고는 ‘AIIB’에 가입함으로써 중국의 체면이 서고 중국이 힘을 받게 할 나라는 아시아와 동아시아에서 더는 없다. 이것이 한국의 냉정한 위상이다.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AIIB’에 한국은 이 눈치 저 눈치를 보다 중국이 원하던 참여의 ‘골든타임(golden time)’은 놓친 느낌이다. 확실한 ‘의사 표시’의 타이밍은 잘 모르지만 미국의 뒤통수를 갈기면서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뉴질랜드가 전격 참여를 선언한 후 한국은 뒤늦게 참여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고 미국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아주 늦은 것은 아니다. ‘AIIB’에 한국이 참여하는 것을 눈이 뒤집히도록 반대한 것은 아베 수상의 일본이다. 미국이 우리의 ‘AIIB’ 참여에 부정적이었던 것은 정작은 일본의 집요하고 교활한 배후 공작 때문이었다고 어떤  언론이 보도한 일이 있었다. 거의 사실 아닌가 싶다.

‘AIIB’는 중국이 우선 500억 달러를 출자한다. 차후 가입국을 통해 자본금을 1000억 달러로 늘릴 계획이다. 이 돈으로 아시아 저개발국을 대상으로 경제 사회 인프라 건설 사업에 투자하면 2020년까지 최소 5조 달러(5650조원)의 천문학적인 숫자의 건설 시장이 형성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유럽이 미국을 배신하고 ‘AIIB’에 뛰어든 이유를 알 만할 것이다. 일본이 미국의 등 뒤에서 한국의 참여를 막으려 했던 이유 역시 짐작되고도 남는다. 일본은 미국과 함께 숟가락을 들고 중국이 차린 밥상에 끼어들 처지가 못 된다. 따라서 한국이 중국과 함께 그 맛있는 떡을 먹게 될 것이라는 사실에 더 배가 아플 수 있다. 더구나 중국이 ‘AIIB’를 주도하면 아시아에서 일본의 위상은 불가피하게 찌그러진다. 이래저래 중국의 ‘AIIB’ 설립으로 속이 가장 불편한 나라는 일본일 수밖에 없다.

2차 대전 후 세계 금융질서는 ‘브레튼 우즈 시스템(Bretton Woods System)’ 하에서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IBRD) 설립을 주도한 미국이 지배해왔다. 이와 함께 아시아에서는 아시아개발은행(ADB)을 거머쥐고 그 총재 자리를 한 번도 다른 나라에 내어 준 적이 없는 일본이 돈줄을 쥐락펴락해왔다. 이래서 중국의 ‘AIIB’ 설립은 ‘세계 금융 권력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이동한 것’이라는 말이 나오도록 만들어주었다. 일본도 타격을 입은 것은 더 말할 것이 없다. ‘AIIB’ 가입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다. 그렇다면 더는 쭈뼛거릴 이유가 없다. 사실 진즉부터 쉬쉬하거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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