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성길 명예관장이 7년여 전 미국에서 입수한 사진. 영은문 돌기둥과 독립문에 6.25당시 총탄을 맞은 흔적이 있다. 하지만 현재는 보수하는 과정에서 메워져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주변으로 전철 선로와 많은 전기줄이 보인다. (사진제공: 정성길 명예관장) ⓒ천지일보(뉴스천지)

6.25 전쟁 이후 이전(移轉)하기 전 총탄 박힌 모습 최초 공개
그러나 총탄 흔적 지금은 메워지고 없어
전쟁의 상흔을 그대로 남긴 강화 초지진과 극명한 대조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정성길 관장이 7년여 전 미국에서 입수한 독립문의 새로운 자료사진을 최초 공개했다. 이 사진은 6.25전쟁 이후 독립문이 이전하기 전 모습이 담겼다. 특히 영은문 돌기둥과 독립문에 총탄 자국이 여러 곳 보인다. 이 흔적은 현재 찾아볼 수 없다. 이유는 보수하면서 시멘트로 다 메웠기 때문.

이 같은 결과는 전쟁의 상흔을 그대로 남긴 인천 강화군 초지진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초지진은 병인양요(1866년), 신미양요(1871년), 운양호 사건(1875년)의 격전장으로 성곽 앞에 있는 노송 두 그루와 성곽 벽에는 당시 포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리고 이곳은 역사교육의 산현장이 되고 있다.

강화군청 문화관광과의 배흥규 관광기획팀장은 “세월이 변해도 포탄을 맞은 자연물이 그 당시를 대변해 주는 역사적 현장이 되고 있다. 이는 후손들에게 대대로 생생하게 전해질 것이며 현장을 방문하는 이들은 당시 전쟁에서 어려움을 겪은 우리 군인, 전쟁의 상흔을 직접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 말했다.

이에 “강화군에서는 계속 보존하기 위한 노력과 동시에 관광 상품화를 해나갈 것”이라면서 “국내 뿐 아니라 여기서 전쟁을 치른 미국, 프랑스, 일본인 관광객 유치를 통해 우리 역사와 문화를 알리도록 할 것”이라 덧붙였다.
▲ 인천 강화군 초지진 전경. 병인양요(1866년), 신미양요(1871년), 운양호 사건(1875년)의 격전 당시 포탄 맞은 노송과 성곽 벽이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 격전 당시 포탄을 맞은 노송과 성곽 벽을 설명해 주는 안내판 ⓒ천지일보(뉴스천지)
▲ 노송 나뭇가지에 총탄 자국이 뚫려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반면 서대문구청 문화체육과 관계자는 “독립문이 국가보존문화재로 등록돼 있어 구청은 관리만 하고 있는 입장”이라며 “독립문의 상징적인 의미를 생각할 때 총탄흔적을 보존하는 게 의미가 있었는지, 또는 의미가 상당하다면 기술적으로 다시 되돌려 놓는 게 가능한지를 따져봐야 할 것 같다. 다만 구에서는 아직 이에 대해 고민하고 있지 않다”고 말해 강화군과는 대조적 입장을 보였다.

정성길 관장은 “독립문과 영은문 기둥에 있던 총탄흔적을 그대로 뒀다면 독립문을 통해서도 6.25전쟁의 상흔까지 느낄 수 있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무식한 행정처리로 인해 독립문은 이제 역사의식도 아무런 의미도 없는 사상누각에 불과해졌다”고 탄식했다.

▲ 현재 독립문의 모습. 총탄 흔적이 현재는 없다.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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