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폭력 ⓒ천지일보(뉴스천지)
초등학교 피해 응답률 중·고교보다 높아
학생의 38.1% ‘신고 효과 없다’ 응답해
처분 결론까지 피해자 보호 시스템 부재

[천지일보=김민아 기자] #1. “엄마, 여기(정신병원 폐쇄병동)에 있기 싫은데 나 때린 애들이 여기 못 들어오니까 그건 좋아.”

지난해 11월 A(12)양은 호흡곤란으로 발작을 일으켜 응급실에 실려 갔다. 신체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러나 같은 증상이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A양은 정신과에서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원인은 학교폭력이었다.

피해자 가족에 따르면 A양은 1년 가까이 3명의 친구로부터 폭행과 언어폭력을 당했다. 쉬는 시간에는 쓰레기를 버리라고 시키는 등 심부름을 강요했다. 학용품과 악세사리 등을 빌려달라고 한 후 돌려주지 않는 일도 다반사였다. 두 손으로 목을 조이거나 발로 차는 등 신체적 폭력도 가했다. 조금이라도 반항하면 가해자 아이들은 합심해서 A양에게 사과를 강요했다. 이에 A양은 무릎을 꿇고 빌기도 했다.

학교폭력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가족들은 A양이 정신과 약을 먹고 잠결에 “몰카가 정말 싫어. 너무 무서워”라고 말해 학교폭력 사실을 인지했다.

학교 측에 확인해 본 결과, A양이 발작 증세를 보이기 전 위(Wee) 클래스에 찾아가 상담한 기록이 있었다. 상담선생님과 담임선생님은 학생들 간에 일어날 수 있는 짓궂은 장난으로 생각하고 가해 학생들을 불러 꾸짖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가해 학생들의 괴롭힘은 더욱 심해졌다.

#2. 지난해 7월 지적장애를 가진 B(13)양은 카카오톡 단체창에서 10여명의 또래 친구들로부터 언어폭력을 당했다. “얼굴도 네모, 뇌도 네모라서 생각이 모자란다”라고 놀리는 아이들에게 화를 낸 것이 화근이었다. 아이들은 단체로 B양을 몰아세웠다. “지○하네” “죽○○ 때려서 양악 시켜줄게” “○○초 대표 창녀” 등 어린 학생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험한 말이 오고 갔다.

◆점점 어려지고… 점점 심해지고

2014년 2차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피해응답률은 1.8%로 중학생(1.1%), 고등학생(0.6%)과 비교해 가장 높게 나타났다. 또한 중·고등학교의 사이버 공간 피해 응답이 줄어든 것에 비해 초등학생의 사이버 공간 피해 응답은 6.2%로 1차 조사(4.8%) 때보다 증가했다.

특히 이와 같은 학교폭력으로 피해 학생이 겪는 심리적 고통은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의 ‘2014년 전국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학교폭력 피해자의 50.0%가 학교폭력을 당했을 때 ‘매우 고통스러웠다’ 또는 ‘고통스러웠다’고 응답했다. 학교폭력 피해 후에 자살을 생각한 학생도 42.9%로 집계됐다.

한국교총은 “초등학교에서 피해학생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중·고교로 이어지는 잠재적 학교폭력의 원인이 된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사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체계적인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익명성 보장 안 돼. 폭력 더 심해지기도”

박근혜 정부는 학교폭력을 사회에서 척결해야 할 4대 악으로 규정하고 대책 마련에 집중해왔다. 학생 보호인력인 ‘학교전담경찰관’은 2012년 514명에서 2014년 1068명으로 2배가량 증가했고, 배움터지킴이 배치율도 78.3%로 확대됐다. 교내 CCTV 설치 비율도 2009년 61%에서 2014년 99%로 증가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느끼는 학교폭력 신고 효과는 미미하다. 2014년 2차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신고 효과에 대해 긍정적으로 응답한 학생은 38.1%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반면 ‘보통이다’ ‘효과가 없었다’고 응답한 학생은 각각 34.0%, 27.9%로 학교폭력에 대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학생의 수가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승진(15) 군은 “학교폭력 신고 시 익명성을 보장한다고 하지만 학교상담실, 117을 통해 신고를 하게 되면 알게 되는 건 시간문제”라며 “도리어 학교폭력을 신고했다가 괴롭힘이 더 심해지는 경우도 발생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송재홍 제주대 교육학 교수는 “여전히 위(Wee)클래스 등 아이들이 상담할 수 있는 상담요원들이 충분히 확보되지 못한 상황”이라며 “업무과다로 상담원들이 일에 집중하는 데 한계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마음을 충분히 받아준다고 느끼고 안전하다고 느껴야 내면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가해자 두려워 피해자가 ‘도망’

학교폭력 피해자에 대한 보호가 부족하다는 것도 문제로 제기된다. 가해자의 경우 학교폭력예방및대책에관한법률에 따른 처분이 학생기록부에 남는다는 점 때문에 재심을 요청하는 경우도 많다.

#1의 경우도 3명의 가해자가 학교폭력관련처분에 불복해 재심을 신청한 상태다. A양의 어머니는 “딸이 가해자 아이들이랑 마주치기만 해도 발작을 일으켜 학교 측에 강제전학을 요청했는데, 출석정지 5일에 학급교체만 이뤄졌다”며 “이 결과를 듣고 내 딸은 더 이상 학교에 갈 수 없었고, 증상이 심해져 결국 정신병원 폐쇄병동에서 입원치료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손석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A양의 경우 가해학생과 분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을 분리하는 데는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럴 경우 차라리 피해자에게 전학할 것을 조언하는 경우가 많다”며 “피해자에게 불안장애가 나타났을 경우 가해학생의 사과와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교폭력 처분 절차에 대해 송재홍 교수는 “학교폭력을 법적인 문제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같은 공간에서 마주칠 가능성이 존재한다”며 “이에 대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1차적으로 피해자 보호가 우선이지만 지금의 제도는 학교폭력 처분 결과가 나기 전까지의 시스템이 부재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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