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속 ‘통일준비위’ 정종욱 부위원장의 ‘체제통일’ 발언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통일준비위는 박근혜 대통령 대북정책 공약의 핵심인 ‘한반도신뢰프로세스’를 가동하기 위해 의욕적으로 만든 ‘민관 합동기구’이다. 특히 정부 차원의 통일준비를 넘어 민간부문까지 확대시킴으로써 국론을 모아 실질적인 통일준비를 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돼 있다. 그런데 그 민간부문의 최고 책임자가 한반도신뢰프로세스를 정면으로 무력화 시키는 발언을 하고 만 셈이다.

정종욱 부위원장은 통일준비위 내부에 북한 흡수통일을 준비하는 팀이 가동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폭로했다. 게다가 흡수통일 과정에서 거론될 수 있는 북한 노동당 간부들과 군부 인사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까지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파장이 커지자 청와대와 통일준비위는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정종욱 부위원장도 12일 “통일준비위 내에 흡수통일 준비팀은 존재하지 않는다. 흡수통일을 전제로 연구하는 팀도 없다”고 해명했다. 이전에 언론에 보도된 자신의 발언 내용을 전면 부인한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은 당파를 초월해서 국가적으로 아주 절박한 통일비전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혔다는 점에서 고무적이었다. 그 후속으로 지난해 3월 말에 발표된 독일 ‘드레스덴 선언’은 비록 추상적이긴 했지만 박 대통령의 진정성이 담겨 있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에서 키워드는 ‘신뢰’로 압축된다. 그 신뢰를 담보하기 위해 ‘남북교류협력사무소’를 설치하자는 제안까지 나왔던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을 ‘흡수통일’ 논리라고 비판하며 사실상 거부해 버렸다. 그로부터 남북관계는 지금까지 뚜렷한 진전이 없을 뿐더러 오히려 더 냉각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남북관계의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코자 박 대통령이 통일준비위를 발족시킨 것이다.

북한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흡수통일론, 정종욱 부위원장이 지금 이 시점에서 그것도 공개리에 폭탄처럼 터뜨릴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뒤늦게 해명을 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북한의 반발은 불 보듯 뻔하다. 다시 온갖 비방과 협박도 서슴지 않을 것이다. 이대로는 통일대박론이 ‘쪽박’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 정부가 진정성 있게 한반도신뢰프로세스를 가동하겠다면 정 부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것이 옳다. 북한이 흡수통일을 거론하는 상대측과 대화에 나서겠는가. 남북 간에 계속 긴장하고 대립하고 싸우겠다면 몰라도 서로 대화하고 신뢰를 구축하겠다면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스스로 물러나거나 사퇴시키는 것이 옳다. 신뢰는 말로만 해서 쌓이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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