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정치의 최고 덕목은 ‘화합’이다. 화합은 소통으로 가능하며 말(담론)은 그 최고의 수단이다. 따라서 “정치의 절반 이상은 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집권세력의 정치 담론은 그 무게감이 실로 엄청나다. 한 사회를 뭉치게 할 수도 있고 전쟁터로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든, 어느 시대든 ‘권력의 담론’과 ‘비판의 담론’은 긴장관계를 통해 공존할 수밖에 없다. 이를 국민의 힘으로 제도화 시킨 것이 의회정치의 시작이다. 그 제도화 수준이 높을 때 우리는 ‘선진 민주정치’라고 부르고 있다.

막장의 정치, 또 마녀사냥인가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사건이 우리 사회를 다시 갈라놓고 있다. 마치 ‘나비효과’처럼 김기종이라는 ‘한 사람’에 의한 어처구니없는 피습사건이 온 나라를 뒤흔들어 놓고 있다. 물론 그 배후에 엄청난 세력이 있는지, 아니면 사실상 북한의 소행인지는 아직 알 수가 없다. 수사당국이 조사를 하고 있으니 판단은 잠시 유보하는 것이 옳다. 최소한 지금까지는 김기종, 그 뿐이다. 그러나 정치권, 특히 정부 여당은 이미 결론을 내려버렸다. “종북세력에 의한 테러”라는 것이 그들의 결론이다. 그래서 ‘배후’와 ‘테러’에 더 방점을 찍고 있는 것이다. 수사당국보다 더 먼저, 더 강하게 이번 사건의 성격을 규정해 버렸다. 왜 그랬을까. 다시 마녀사냥에 나서겠다는 의도 외에는 해석하기 어렵다.

중동 4개국 방문 중에 박근혜 대통령이 일찌감치 이번 사건의 성격을 암시했다. 박 대통령은 “이 사람(피의자 김기종씨)이 단독으로 했는지 배후가 있는지 철저히 밝혀야 한다”며 배후 세력을 거론했다. 그러자 검찰과 경찰은 대규모 수사팀을 구성해 국가보안법 위반 여부 및 배후 수사에 착수했다. 이에 뒤질세라 새누리당은 하루가 멀다 하고 종북세력 규탄에 나서더니 급기야 새정치민주연합을 ‘종북숙주당’으로 몰아세웠다. 이와 동시에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테러방지법’을 빨리 통과시켜야 한다거나 이참에 ‘사드’까지 배치해야 한다는 폭탄 발언까지 거리낌 없이 쏟아내고 있다. 리퍼트 미국대사 피습사건이 동아시아의 안보문제까지 뒤흔들고 있는 셈이다. 가볍다기보다 오히려 참담한 현실이다.

정부 여당에게 김기종은 새로 출현한 ‘마녀’로 보일지 모르겠다. 친북 색채가 농후하고 ‘혈맹국’ 미국대사를 공격했으니 이보다 더 효과적인 정국 반전의 기회가 또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야권과도 미미하지만 끈이 닿아 있다. 이참에 야당도 제압할 수 있을 뿐더러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4월 보궐선거’에도 호재가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뭐든 여의도로만 넘어오면 귤이 탱자가 돼버리는(南橘北枳) ‘막장의 정치’는 이렇게 탄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찌 할 것인가. ‘마녀’치고는 뭔가 좀 이상하고 부족해 보인다. ‘종북’과 ‘배후’는커녕 불쌍할 정도의 환자가 아닌가 싶다. 사정이 이런데도 거침없는 마녀사냥의 그 뒤끝이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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