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일 오전 동국대 이사장 직무대행 영담스님(왼쪽 첫 번째)이 일면스님(오른쪽 첫 번째)에게 총장선거 재실시 요구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직무대행 영담스님, 총장선거 재실시하면 이사장 수용
일면스님 “합법으로 선출” 사실상 거부… 등기절차 진행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총장선거 외압 논란으로 불거진 동국대 사태가 총장후보자의 논문표절 의혹에 이어 이사장 선출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심지어 총학생회와 (일면) 이사장 인수위원회 간 이사장실 점거를 두고 물리적 충돌이 빚어졌다. 조계종과 일면스님 측은 십여편의 논문표절이 드러난 보광스님의 총장 선임 강행 움직임을 굽히지 않고 있어 사태가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동국대에 따르면 11일 오후 5시 30분께 학부·대학원 총학생회 관계자 10여명이 신임 이사장인 일면스님의 출근을 저지하겠다며 서울캠퍼스 본관 이사장실을 점거했다. 이에 이사장직 인수위원회 측 30여명이 이사장실 진입을 시도하면서 학생들과 서로 밀고 당기는 등 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양측 모두 가벼운 찰과상을 입었다.

총학생회는 “일면스님의 이사장실 출입을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인수위는 합법적으로 선출된 이사장의 출근을 막아서는 안 된다고 맞서며 수시간을 대치했다.

◆“동대, 종단정치로 자주성 흔들”

앞서 교수협의회와 학생회, 동창회가 ‘동국대학교의 정상화를 위한 범동국인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종단과 인수위를 성토하고 나섰다. 비대위는 이날 오전 로터스홀에서 출범식 및 기자회견을 가졌다. 비대위는 선언문을 통해 “종단 수뇌부는 특정 후보에 대해 사퇴압박을 가했고, 이사회는 학원의 자주성을 지키기는커녕 모든 동국인의 반대에도 ‘표절총장’ 선임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총장 선임절차를 원점에서 재실시, 총장후보추천위원회 규정 개정 뒤 총장 선임, 스님이사 절반 이하 축소, 조계종의 사과와 재발방지책 마련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비대위 측의 실력 저지에도 불구하고 일면스님 이사장직 인수위가 이사장실을 장악하면서 밤새도록 비대위와 인수위 간 대치가 벌어졌다. 12일 새벽 2시 10분께 신원을 알 수 없는 청년들의 호위를 받으며 일면스님이 이사장실에 출근했다. 이 과정에서 비대위와 인수위 측이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 11일 밤 동국대 이사회 감사 제정스님이 일면스님 인수위 측 관계자와 이사장실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결론 없는 논쟁… 비대위-인수위 대치

일면스님은 “동국대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왔다. 나를 믿어달라”면서 비대위 측의 퇴장을 요구했으나 비대위는 이사회 녹취록 공개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일면스님은 공개 의사를 밝히고 대화분위기로 이끌었다.

이후 오전 7시 30분께 직무대행자로 지명된 영담스님이 도착했다. 영담스님은 “관계없는 스님과 교직원들은 모두 나가달라”고 요청했으나, 일면스님 측은 대꾸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리를 지켰다. 이사장실은 일면스님과 인수위 측, 영담스님과 비대위 측 수십명이 뒤섞여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3시간이 넘도록 서로의 입장만 주장할 뿐 합의를 이끌지 못하고 설전만 오갔다.

최대식 감사는 일면스님과 영담스님이 대화를 통해 이번 사태의 해법을 제시해 줄 것을 제안했으나 영담스님이 이를 거절했다. 스님은 지난 이사회에서 임시의장에 의한 이사장 선출의 부적절성을 여러 차례 문제를 제기했다.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영담스님은 새로운 제안을 내놓았다. 스님은 “현 사태의 핵심은 총장 선출 문제다. 처음부터 다시 진행해야 한다”며 “일면스님이 그것만 약속해주면 이사장을 하시라”고 제안했다. 또 총장 선거를 원점으로 다시 진행한다면 직무대행은 물론 이사직에서도 물러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일면스님을 이사장으로 수용하는 조건으로 총장 선출 재실시를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일면스님은 이를 거부했다. 스님은 “이사장 선출은 합법적으로 진행됐다”며 자체적으로 이사장 등기절차를 진행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동국대 사태, 조계종 절뺏기와 같다”

영담스님은 전날(11일) 이사장 직무대행자로서의 입장을 밝히며, 현 동국대 사태에 대해 조계종 내에서 벌어졌던 절 뺏기 싸움과 너무나 유사하다고 문제점을 꼬집었다.

스님은 “이사 과반수를 넘기면 학교는 종단정치의 종속변수로 전락할 것이라는 것은 불문가지였다”며 “그동안 보아온 총장후보에 대한 사퇴외압, 부도덕한 표절총장 선출강요, 법과 규정을 무시한 이사장 선출 등 모든 행위들이 우리가 익히 접했던 조계종단의 절 뺏기 싸움과 너무도 닮아 있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12일 상황을 미리 예측하며 인수위의 행태를 지적했다. 스님은 “저들(일면스님 인수위)은 자기들이 선출한 이사장이 적법하다고 다중을 앞세우고 이사장실을 진입, 점거하려 할 것”이라며 “이사장실을 접수하면 전광석화로 표절총장을 선임하고 구성원들을 겁박하고 회유하면서 사태를 진정시키려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영담스님은 이 과정에서 학교 구성원들이 상처를 입고 깊은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들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또 “이사장, 총장, 교수, 직원은 모두 (자승) 총무원장의 눈치를 살펴야 할 것”이라며 “사립학교법에서 보장하는 사학의 자주성과 공공성은 처참하게 버려지고 말 것”이라고 내다봤다.

직무대행자 영담스님의 예상대로 일면스님이 12일 이사장실을 사실상 점거하면서 동국대 사태가 종단 측에 유리한 형국으로 전개되고 있다. 종단정치로 비화된 동국대 사태의 봉합을 위해 일면스님과 영담스님이 어떤 해법을 제시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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