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하철택배 할아버지가 외대에서 수거한 카메라를 가방에 넣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르포 | 지하철택배 동행

“사람과의 소통은 삶의 활력소” 건강에도 도움
경제적 어려움 겪는 노인 위한 일자리 개발 필요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네, 어디서 물건을 받으면 되죠? 금방 가져다 드릴게요.”

전화를 끊은 순간, 그의 눈빛은 달라졌다. 운동화도 단단히 조여 맸다. 체구의 절반 크기의 가방도 짊어졌다. “특명이야, 물건을 조심히 다뤄야 해.”

5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을지로3가역. 주원일(가명, 78) 할아버지는 인파 사이를 잰걸음으로 헤치고 지나갔다.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날쌘돌이 같았다.

“외대에 가서 물건을 받아야 해. 종로3가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면 되지.” 그는 노선을 ‘술술’ 설명했다. 머릿속에 지도가 새겨진 듯했다.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길 몇 차례. “할아버지 힘들지 않으세요?” 그에게 물었다.

▲ 할아버지가 인파 사이를 잰걸음으로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마치 ‘날쌘돌이’ 같아 보인다. ⓒ천지일보(뉴스천지)

“힘들긴 뭘. 재밌어.” 주 할아버지의 눈가에 웃음주름이 폈다. “택배는 70살 넘은 사람에게는 좋은 직업이야. 보통은 집에서 할 일 없어서 놀잖아. 집에 가만히 있으면 젊은 사람들도 늙기 마련이지. 늙은이들은 오죽하겠어. 머리도 쓰고 돈도 벌 수 있어서 오히려 더 건강해졌어.”

오전 11시. 지하철을 타고 외대 부근의 한 병원에 도착했다. 거기서 그는 카메라를 받았다. 할아버지의 임무는 병원에 빌려줬던 카메라를 수거해, 정발산역까지 가져오는 것이었다. 그는 ‘꽁꽁’ 동봉된 카메라를 받아 가방에 조심스레 넣었다. 정발산역에 물건을 안전하게 배달하는 일만 남았다.

▲ 정발산역에 가기 위해 구형 핸드폰을 보고 있다. 핸드폰에는 8년간 택배업을 하면서 쌓은 노하우가 담겨 있다. 특히 역에 빠르게 도착할 수 있는 방법이 암호로 표기돼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그는 목에 걸고 있던 구형핸드폰을 켰다. 최근 스마트폰을 샀지만, 구형 핸드폰은 그에게 특별한 보물이다. 8년간 택배업계에서 쌓은 비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

‘정발산 73에 1’ ‘1100-2400’ 알 수 없는 암호가 적혀 있었다. “7-3번에서 지하철을 타고 정발산역 1번 출구로 나가라는 뜻이야. 시간을 단축할 수 있지.” 주 할아버지는 설명했다. ‘1100-2400’은 출구에서 나간 후부터 적용된다. 1은 ‘직진’, 2는 ‘우회전’, 3은 ‘좌회전’, 4는 ‘뒤돌아’라는 의미다. 즉 직진으로 100m를 간 후 우회전해서 400m를 가라는 뜻이다.

▲ 카메라가 무사히 주인 A씨에게 전달되고 있다. A씨는 신뢰가 가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일을 맡기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낮 12시. 드디어 카메라는 주인 A씨에게 전달됐다. A씨는 “당일에 바로 물건을 받을 수 있고, 믿을 수 있어서 오래전부터 일을 부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후 2시 지하철택배(협동조합) 사무소에 도착하자 새로운 임무가 주어졌다. 종로에서 주문한 공사용 부품을 석계역까지 이송하는 것. 부품가계에서 물품을 받은 그는 가방에 부품을 잘 고정했다.

“하루에 몇 차례 일하세요?” 그에게 물었다. “평균 4~5건 일하지. 택배비는 거리로 결정돼.” 그가 일하는 택배 회사는 다른 곳(수수료 30%)과 달리 수수료가 15%밖에 되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 최소 40~50만원, 단골이 많은 노인들의 경우 두 배의 소득까지도 올리고 있다.

▲ 할아버지는 매일 운동화를 신는다. 운동화가 쉽게 닳다 보니 운동화 바닥에는 수차례 수선된 흔적이 남아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매일 걸어 다니기 때문에 운동화는 필수다. 그러다 보니 운동화 바닥은 이미 닳고 수차례 수선돼 있었다. 할아버지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를 한 번에 보여줬다.

석계역에 도착한 지 5분. 고객이 직접 물품을 받으러 역으로 나왔다. 이럴 때면 주 할아버지는 오히려 고맙다고 한다. “겨울은 눈보라도 치고 칠흑같이 어두워. 그때 물건을 받으러 나오면 진짜 구세주를 만난 거같아. 또 간신히 집으로 찾아가서 물건을 주고 오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어.” 할아버지는 지그시 미소 지었다.

택배 일을 하면서 가장 행복할 때는 언제일까. 바로 ‘사랑 배달꾼’이 될 때다. 시아버지가 아이를 낳은 며느리에게 주는 꽃 배달, 남자가 여자에게 보내는 꽃·선물 배달 등이 이에 속한다. 그는 “사람들을 만나는 건 참 좋은 일”이라며 “삶의 활력소가 된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일자리사업에 대해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은 “어르신들은 일을 하면서 자신이 이 세상에서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며 “소통은 몸과 정신을 건강하게 만든다”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급속한 노령화로 인해 2010년 181만명이던 경제활동 참여 노인 수는 2030년 467만명, 2040년 640만명, 2050년 734만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고 사무처장은 “일을 원하는 어르신들은 대부분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다”라며 “우리 사회가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은 어렵게 사시는 어르신을 위한 일자리 개발”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초연금 비율을 높이고 여가와 일, 자원봉사를 균형적으로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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