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게 보내는 엽신(葉信)
곽진구(1956~ )
먼저 간 친구로부터 소식이 없다
그곳이 어디더냐?
춥더냐? 살 만하더냐? 좋아하는 술은 있더냐?
아직도 루머가 돌더냐?

여긴 여전히 달이 뜨고 달이 지고
사랑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그런 여자가 살고
그런 여자에게서 헤어나지 못하고,
푹 빠져 살고
나는 그 여자의 집을 열심히 고쳐주고, 밥 얻어먹고

[시평]
살아가다 보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나 둘 친구들이 이 세상 떠나는 경우 흔히 만난다. 그러나 한번 떠난 그들은 이제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다만 기억 속의 사람이 되고 만다. 함께 마시던 술자리, 함께 지냈던 시절, 혹은 그의 주변을 정처 없이 떠돌던 루머, 등등의 그런 기억으로만 자리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그리나 우리가 남아 있는 이 이승은 여전히 시간이 되면 달이 뜨고 또 지는 그러한 세상. 사랑이라는 이름에 갇히어 사랑타령이나 하며 아옹다옹 살아가는 그런 세상. 이러함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그저 밥이나 얻어먹고 사는 그렇고 그런 세상.

먼저 간 그 친구는 진정 이러한 세상일들로부터 벗어난 것일까. 그러므로 세상의 온갖 루머로부터도 이제는 모두 벗어난 것일까.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 먼저 떨어져 볼 수 없는 꽃을 그리워하는 나뭇잎 마냥, 이제 이 지상에 남아 있는 그, 먼저 떨어져간 친구를 그리워하며 엽신(葉信)을 띄운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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