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은사역명’을 두고 종교편향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9호선 지하철역사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왼쪽). 1번 출구를 가리키는 이정표. ⓒ천지일보(뉴스천지)

지하철역명 종교편향 논란

개신교 “봉은사, 친일 사찰”
일제강점기 친일 활동 주장

불교 “지적할 자격이 있나”
한국교회 친일 행각 드러내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서울지하철 9호선 929정거장 명칭 ‘봉은사역’에 대해 종교편향 논란에서 이제는 친일 논란으로 공방이 치열하다.

지난 3일 국민일보가 봉은사에 대해 친일 사찰 의혹을 제기했고, 불교계 언론들이 개신교의 신사참배 등 치욕의 역사를 되짚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랄 수 있느냐는 격이다. 네티즌들의 온라인 공방도 치열하다.

봉은사에 대한 친일 의혹은 국민일보 보도에 앞서 지난달 13일 이미 한국교회언론회가 논평을 통해 제기한 바 있다. 교회언론회는 “봉은사는 친일 색채가 명백하다”며 “지금에 와서 불교계가 과거 역사에 대한 반성은 없고, 오히려 부끄러운 과거가 들춰질 수밖에 없도록 하고 시민들에게 선전하는 것은 후안무치(厚顔無恥)를 넘어 이장폐천(以掌蔽天-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림)이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봉은사 주지급 스님들이 친일 행위했다”

교회언론회에 따르면 봉은사 출신 친일 인사가 주지급만 3명이다. 이 중 강성인은 조선총독부가 황민화정책으로 ‘심전개발운동’을 펼칠 때 적극 가담했고,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일본군 후원을 위해 갖가지로 선동했다는 설명이다. 또 1940년 이후 일제에 의한 창씨개명에 앞장섰고, 일본군의 무운장구를 기원하는 기원제 및 중·일전쟁 기념법회와 법요식을 거행하는 등 친일행위에 적극 가담했던 홍태욱도 1940년 봉은사의 주지를 지냈다. 언론회는 일제의 심전도개발의 선전지 역할을 하던 ‘불교시보’를 창간한 김태흡도 일본 군대인 황군에게 충성을 하고 그들을 지원하며, 신사참배를 적극 지지했다고 지적했다.

국민일보는 교회언론회가 꼬집은 내용을 구체화했다. 강성인 홍태욱 김태흡 외에도 일제 강점기 동안 주지를 맡았던 나청호 김상숙 등을 언급하며 당시 일제를 칭송했던 이들의 행적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개신교, 신사참배·민족말살 동참해놓고…”

그러나 불교계는 봉은사역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를 연재하는 국민일보에 불쾌감을 표하고, 개신교계가 일제강점기 어쩔 수 없이 일제에 굴복해야 했던 1200년 된 전통 사찰을 호도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법보신문, 불교닷컴 등 불교계 언론들은 국민일보 보도에 대한 반박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불교닷컴은 “‘봉은사역’ 이름에 거는 개신교계의 억지는 그들이 일제강점기 신사참배에 동조했다는 사실에서 쓴웃음마저 짓게 한다”며 주기철(1897~1944) 등 일부 목회자를 제외하고는 대다수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굴종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매체는 신사참배에 저항해 못판 위를 걷고 옥사한 주 목사 등 일부를 빼고 일제의 민족혼 말살 부역에 동참한 개신교회와 관련 목회자는 셀 수 없이 많다고 덧붙였다.

법보신문도 “불교계 안팎에서는 역사 왜곡까지 동원해 종교간 갈등을 야기하는 트집 잡기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며 “특히 역사학자들은 봉은사를 친일사찰로 규정한 시각에 대해 ‘일천한 역사 인식’이라고 잘라 말했다”고 전문가들을 인용·보도했다.

◆치욕의 역사 들춰내기 진흙탕 싸움

사실 일제강점기 때에는 권력에 굴복해 치욕의 역사에 동참한 종교인이 많다. 개신교도 1938년 조선예수교장로회가 신사참배를 가결한 후 1942년 목회자들이 신도들의 헌금을 모아 일본 해군에 전투기 ‘조선장로호’를 헌납했다.

한일장신대학교 이종록 교수의 발표에 따르면 당시 친일 목회자들은 일제의 요구에 따라 심지어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일제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도 했다. 발표에 따르면 목회자들은 “신사참배를 ‘우상숭배’라고 하는 게 불경죄”라고 하거나 “반도인들은 대일본제국의 신민이 된 것을 영광스럽게 여기고 자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바울이 헬라어를 사용하고 신약성경도 헬라어로 기록했던 것처럼 우리도 국어인 일본어를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란의 당사자인 봉은사는 공식적인 반박자료를 준비하고, 사찰과 신도들의 명예훼손에 대한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 봉은사 측은 “이 사안은 천년의 역사를 이어온 봉은사의 역사와 가치 전체에 대한 부정일뿐 아니라 나아가 한국불교 전체에 대한 매도”라고 반박했다.

봉은사 주지 원학 스님은 불교계 언론을 통해 “올바른 역사인식을 통해 국민들을 선도해야 할 종교계가 특정한 사안에 대한 종교적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천박한 역사인식을 드러낸 것이자 매국에 버금가는 행위”라고 분노했다. 아울러 “막무가내로 흠집 내기를 자행하는 것은 스스로 종교적 이기심을 드러낸 것”이라고 꼬집었다.

개신교계가 서울시에 역명 변경을 촉구하고 있지만, 오는 28일 개통을 코앞에 두고 있는 서울시는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는 입장이며 불교계 또한 반발하고 있어 수용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이에 ‘개신교-불교’의 종교편향 논란과 치욕의 친일 역사 들춰내기 진흙탕 싸움은 당분간 멈춰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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