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의 성지 탑골공원을 가다] 독립 함성 울렸던 그곳, 이젠 노인만 찾는 곳으로
[3.1운동의 성지 탑골공원을 가다] 독립 함성 울렸던 그곳, 이젠 노인만 찾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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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탑골공원에 있는 손병희 선생 동상 앞에 노인들이 앉아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할아버지 쉼터 아닌가요?”… 역사교육 부재로 의미 퇴색
팔각정·원각사지석탑 등 문화재에 담긴 뜻 알고 봐야 감흥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노인들의 놀이터’인 서울 종로구의 탑골공원. 5일 오전 10시에 찾은 탑골공원에는 코가 시릴 정도로 추운 꽃샘추위에도 30여명의 노인들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공원 내에 있는 돌의자에 앉아 지난밤 동안 만나지 못했던 동년배 할아버지들과 안부 인사를 하고 논란이 되고 있는 정치 현안을 나누기도 했다. 한 할아버지는 허리에 소형 카세트 라디오를 차고 신나게 공원을 산책했다.

‘추운데 왜 공원에 나오셨냐’는 기자의 질문에 종로구에 사는 손병재(가명, 70) 할아버지는 “집에 있으면 딱히 할 일도 없고, 자녀들 눈치 보여서 아침밥 먹고 바로 나온다”며 “공원에 오면 그나마 다른 할아버지들과 얘기 나누고 운동도 해서 좋다”고 말했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도 1만 5720㎡의 공원에는 노인들뿐이었다. 날씨가 좋을 때는 300여명의 노인이 있지만, 추웠던 이날 1시간을 평균으로 많게는 80명, 적게는 40명의 노인이 공원에서 하루를 보냈다. 더러 관광객 2~3명이 팔각정과 원각사지 10층석탑을 관람하고 유유히 공원을 빠져나갔다. 1년 중 공원에 전 연령층이 드나드는 날은 손에 꼽힌다.

공원 뒤편의 2000~3000원대의 국밥집은 돈 없는 노인들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 동네 국밥이 3000원밖에 안 해. 맛도 일품이어서 자주 오는 편이야. 오늘은 만날 사람이 있어서 기다리고 있어.” 김영진(74) 할아버지가 말했다.

탑골공원을 중심으로 왼편엔 관광객을 태우는 전세버스 6~7대가 주차돼 있어 인사동 쪽 길에선 탑골공원을 볼 수 없다. 서문 쪽에는 구제 물품을 파는 상인들과 노숙자들이 둘러 있었다. 술에 취한 노숙자들은 행인들에게 구걸하거나 큰 소리로 시비를 거는 모습도 보였다. 공원 오른편엔 저렴한 음식점들과 금은방이 즐비했다.

▲ 탑골공원 서문 쪽에 노인들이 장기를 두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3.1운동의 점화지인 탑골공원. 2015년 현재의 탑골공원은 젊은 층에겐 그저 ‘노인들의 천국’ ‘노인들만을 위한 아지트’라고 인식되는 등 그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사적 제354호로 지정된 탑골공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도심 내 공원으로 1919년 3.1운동의 발상지다.

고려 시대 흥복사가 있던 자리에 1465년(세조 11년)에 원각사라는 절이 세워졌으나 연산군 때 폐사됐고 고종 34년에 영국인 브라운의 설계에 의해 공원으로 조성됐다. 3.1운동 당시 학생 대표가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읽었으며, 이곳에 있던 시민들과 학생들은 종로․서울역․정동․서대문 등을 행진하며 시위를 벌였다.

공원 내에는 원각사의 창건에 대해 기록된 보물 제3호인 원각사비, 해시계인 앙부일구와 받침대 등의 문화재와 3·1운동 기념탑, 3·1운동을 기록한 부조, 의암 손병희 선생의 동상과 한용운 시비 등이 있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공원에 대해 젊은층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탑골공원 앞에서 만난 김희선(23, 여) 씨는 “그냥 노인들이 많은 공원, 문화재라고 생각하고 있다. 솔직히 어떤 곳인지 잘 모른다”며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쉬는 곳 아니냐. 바빠서 깊게 생각 안 해봤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이 공원을 이용하다가 피해를 본 사례도 있다. 지난해 10월 친구들과 탑골공원에서 도시락을 먹던 A양은 황당한 일을 겪었다. 도시락을 먹고 있다고 한 노인에게 “씨×, 새×. 공원에서 나가!” 등의 욕을 듣고 혼이 났기 때문이다. A양은 “원래 공원에 학생들이 들어가면 안 되는 거냐”며 “도시락 먹어서 혼난 것인지 왜 혼났는지 모르겠고, 기분도 나빴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이러한 현상은 역사교육의 부재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송시내 ㈔우리역사바로알기 교육국장은 “탑골공원은 현재 우리가 사는 이 터전이 오랜 역사를 지나왔다는 것을 가장 가까이 느낄 수 있는 장소”라며 “더구나 이 공원은 3.1운동 당시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던 팔각정과 국보2호인 원각사지 10층석탑이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또 송국장은 “역사를 알면 공원을 지날때 ‘임시정부가 태동한 계기를 만들어준 3.1운동이 저 팔각정에서 일어났구나’라며 의미를 되새기지만 현재는 ‘재미도 없고, 노인들만 있는 곳’이라는 인식이 가득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의미를 돌아볼 수 있지만 모르기 때문에 감흥이 없다”며 “배우면 보이고 비로소 사랑하게 되듯 역사 교육을 암기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깊이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역사가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것임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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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준 2015-03-10 14:36:34
저 어르신들에게 무관심한 대한민국 정부다 더 나쁜건지 역사를 기억 안한다고 뭐라 할건 아니다

안서현 2015-03-10 01:25:57
역사교육이 제대로 안되고 있으니 이런일이 앞으로 더 비일비재할꺼야 ㅜ

smarteco 2015-03-09 15:34:56
그러네...진짜 노인들만 가득한 공원 하면? 탑골공원.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의미가 있는 공원인데
관리가 아쉽나?
내기억을 더듬어도 봐서 저곳은 노인들이 많았다 ㅠ 어르신들이 많아서 나쁘다는것이 아니라 인식되어야 할것들이 인식이 안되니 ㅠ
고등학생일때도 그랬던것 같다~

포포론 2015-03-09 14:28:46
저는 그래도 예전에 역사적인 현장이어서 찾아가서 둘러보면서 사진도 찍고, 각종 설명들도 잘 읽어보고 했는데.. 막상 주변을 둘러보면 저같이 역사적인 의미로 오는 사람보다는 기사내용처럼 그냥 노인들 쉼터같은 곳이라고 생각이 들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