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철부지급이라는 말이 있다. 말뜻을 새기자면 ‘수레바퀴 자국 속에 있는 붕어의 다급함’이 될 것이다. 이 말이 만들어진 연유는 이러하다. 장자(莊子)가 어느 땐가 생활 형편이 어려워져 감하후(監河侯)라는 세도가에게 식량을 빌리러 갔다. 장자같은 존경받던 당대의 대학자, 현인이 얼마나 다급하면 식량을 빌리러 갔겠는가. 차마 말이 떨어지지 않았을 것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배부른 감하후는 짐짓 여유를 부린다. ‘좋소. 빌려드리지요. 머지않아 내 영지에서 세금이 들어오는데 그 때 넉넉하게 빌려 주겠소’라고.

자존심도 상하고 화도 난 장자는 이에 이렇게 응대한다. “여보시오. 내가 당신한테 오는데 수레바퀴 자국 속의 붕어가 불러 가보니 붕어가 이렇게 말합디다. ‘나는 원래 동해에 살던 붕어인데 이렇게 수레바퀴 자국에 갇혀 죽을 지경이 됐습니다. 그러니 물 한두 바가지만 구해다 살려줄 수 없겠느냐’고 말이지요.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했소. ‘그래 좋다. 내가 곧 월나라와 오나라의 임금을 만나게 되는데 그 때 임금들에게 말해서 서강의 물을 끌어대어 살려 주마’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붕어가 화가 나서 이렇게 말합디다. ‘여보시오. 당장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처한 형편을 보고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겁니까. 차라리 건어물 가게에서나 나를 찾으시요’라고 말이지요.”

철부지급의 다급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야박한 세상인심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을 것 같다. 어려울 때 빌려주고 도와주고 또 나중에 갚고 은혜에 보답하면 세상이 평화로워질 텐데 사람 사는 세상에서 그것이 그렇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하지만 부자들은 알아야 한다. 가난한 이웃을 보살피고 자선과 기부, 후원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결국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남을 돕고 좋은 일을 하면 남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거니와 자신도 행복감을 느끼지 않는가. 성탄절이 있는 연말, 새 꿈을 꾸면서 맞는 연시가 모두를 들뜨게 한다. 이런 때에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 힘든 이웃들에게도 좀 베푼다면, 베풀면서 즐긴다면 그것이 바로 자신들이 더욱 행복해지는 길이요 존경받는 길일 것이다.

국가적으로 우리 한국이 철부지급이었던 때가 있었다. 일제의 수탈로부터 벗어난 1945년 해방 후부터 1950년 한국 전쟁의 참화와 그것의 여파가 이어진 지난 50년대 말까지 그러했다. 학교에서 구호물자로 들어온 분유와 옥수수 가루를 배급받아 본 사람들에게는 그때의 참담했던 생활상을 더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양식이 떨어지면 라면을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는 그 시절을 모르는 세대는 역사 공부를 더 해야 된다. 아니 역사를 알아야 자신과 나라를 바르게 끌고 갈 것임으로 당연히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가 겪었던 시대상황을 알도록 제대로 가르쳐야 할 책임이 어른들에게 있다. 그렇긴 한데 그때는 라면도 없었거니와 설사 있었더라도 대부분 라면을 사먹을 형편들도 못 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하면 알아듣게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절박했던 시절에 외국의 구호물자와 원조가 없었다면 소위 고난의 행군 때 수백만 명이 굶어 죽은 북한주민들의 비극,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아프리카에서의 기근과 아사문제와 같은 사태를 겪었을 것이라고 하면 이해에 조금은 도움이 될까. 사실 우리는 1961년까지 30억 달러 가까운 외국(미국)의 무상원조를 받고 살아왔다. 지금의 인플레 된 통화가치로 환산한다면 어마어마한 돈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하여튼 남의 도움을 받고 살았던 우리가 그 가난을 딛고 일어나 버젓하게 선진국들의 모임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DAC(개발원조위원회)에 가입한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기도 어렵지만 가난한 나라가 부자가 되는 것, 더구나 남을 돕는 국격(國格)을 가진 나라가 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말대로 ‘21세기의 기적이요 성공스토리’임에 틀림없다. 이것은 결코 우리의 자화자찬이 아니다. 이 순간의 한국을 바라보는 다른 나라들의 시각이 바로 대통령이 말한 그대로다. 그럼에도 축배라도 들어야 할 이 가슴 벅찬 일에 우리 내부의 감동이 들끓지 않는 것은 웬일인가. 정작 우리가 우리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어서가 아닌가.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을 차리면 산다는데 정치갈등, 이념대립, 계층갈등, 노사대립, 지역갈등의 내홍으로 지나치게 분열되고 산만해진 것은 아닌지 성찰이 필요할 것 같다. 이럴 때 나팔도 불고 꽹과리라도 두들겨서 분위기를 잡아줌직한 언론마저도 연예나 스포츠 뉴스를 다룰 때와 같은 흥마저도 보여주지 않으니 안타깝다. 이 경이로운 소식이 어찌 연예 스포츠 뉴스만큼의 대접도 못 받아야 한단 말인가.

철부지급의 사정이 우리 내부에 없지 않은데 남의 나라 원조에 돈을 써야 하느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부에 그런 모순이 조금이라도 없는 나라는 없다. 세계 제1의 원조국 미국엔들 노숙자가 없고 거지가 없으며 다급한 사람이 없는가. 그것은 그것대로 대처해가면 되는 일이다. 개도국이나 저개발국을 돕는 것은 인도주의적인 일일뿐 아니라 결국 원조공여국의 국익을 키우고 우호국을 많이 만드는 국가전략적인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DAC의 회원국이 된 것은 과거 원조수혜국으로서 꼭 국제사회에 보은하는 차원을 훨씬 넘어선다. 우리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온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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