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문공은 자어를 붙잡아 죽였다. 그런 다음 자어에게 회공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그 해 가을에 주나라에서는 양왕의 아우인 대가 책나라의 힘을 빌려 반란을 일으켰다. 그 때문에 양왕은 정나라로 망명했다. 그는 이듬해인 목공 25년에 진(秦)과 진(晋) 두 나라에 사자를 보내 구원을 요청했다. 목공은 손수 군사를 이끌고 문공과 협력하여 양왕을 입국시켰고 양왕은 아우 대를 붙잡아 죽였다.

목공 28년 진(晋)나라 문공은 성복에서 초나라 군을 무찔렀다.

30년에 목공은 진나라 문공과 협력해 정나라를 포위했다. 정나라 왕은 몰래 사자를 목공에게 보내 자신의 뜻을 전했다.

“우리 정나라를 치면 득을 보는 것은 진(晋)나라의 문공이며 귀국은 아무런 이익도 없습니다. 진(晋)나라가 강해진다는 것은 오히려 귀국에 있어서는 화가 되는 원인이 될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목공은 군사를 거두어 귀국해 버렸기 때문에 진나라 문공도 어쩔 수 없이 군사를 회군하고 말았다.

목공 32년 겨울에 진(晋)나라의 문공이 죽었다. 그즈음 정나라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나라를 진(秦)나라에 팔아넘기려는 자가 나타났다. “정나라 도읍의 성문은 제가 관리하고 있습니다. 제가 손만 쓴다면 쳐들어가는 것은 간단합니다.”

목공은 곧장 건숙과 백리해, 두 신하를 불러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두 사람은 “정나라로 가자면 딴 나라의 영토를 여러 곳으로 지나야 합니다. 일찍이 먼 나라에 쳐들어가서 승리를 거둔 예는 없습니다. 게다가 정나라에 그런 매국노가 있는 이상 우리나라에도 그런 자와 닮은 자가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것은 그만두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라고 반대했다.

두 사람의 반대 의견에 목공은 초조한 나머지 말했다.

“그대들은 잘 모르오. 나는 이미 결심했소.”

그렇게 말한 목공은 백리해의 아들 맹명시와 건숙의 아들 서걸술 그리고 백을병 등을 곧 원정군의 장수로 임명했다.

드디어 그들이 출전하는 날 백리해와 건숙은 통곡을 했다. 그러자 목공이 물었다.

“장수들이 출전하는 마당에 울다니 무슨 일이오? 행여 아들들이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고 생각하오?”

“아닙니다. 결코 돌아오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폐하의 부르심에 따라 저희 자식들이 출전하게 됐으나 소신들은 이미 늙은 몸이라 원정 기간이 길어진다면 이 세상에서 다시 그 애들을 만나 볼 기회는 없습니다. 그것을 생각하고 슬퍼하는 것입니다.”

두 사람은 어전을 물러나와 자식들에게 말했다.

“너희 군사들이 패한다면 그곳은 반드시 효산 골짜기가 될 것이다.”

진(秦)나라가 동쪽 정벌을 나선 것은 목공 33년 봄이었다. 군사들은 예정을 바꿔 진(晋)나라 영토 안을 지나가지 않고 주나라 도읍인 북문을 지나갔다. 진나라 군대가 북문을 지나가는 것을 본 주나라 왕손만이 말했다.

“천자가 계신 거성의 문을 지나가다니 무례하기 그지없다. 이래 가지고는 싸움에 이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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