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연구소장

 
지난달 83세로 타계한, 마이클 조던의 스승 딘 스미스 감독의 생전 이야기다. 백인인 스미스가 1958년 미국 농구명문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채플힐캠퍼스에 농구감독으로 처음 부임했을 때, 이 지역의 인종차별도 미국 여느 지역처럼 극심했다. 교회에서 자란 캔자스시티 출신의 스미스 감독은 인종차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스미스 감독은 대학교회의 한 흑인 친구와 함께 선수들을 동행해 흑인 출입이 금지된 고급 레스토랑에 갔다. 이 레스토랑 관계자들은 먼저 주저주저하다가 스미스 감독의 당당한 자세에 압도돼 오랫동안 유지했던 불문율을 깼다.

당시만 해도 무명이었던 스미스 감독은 잘못될 경우 공공질서 위반으로 체포될 수도 있었고, 학교에서 해고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의 인종차별주의는 막을 내렸고, 대학 인근 도시는 공공시설에 대한 흑인들의 이용이 자유로워졌다.

주위에 소리 내지 않고 코치직에 전념했던 스미스 감독은 조용히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했던 지도자였다. 자신이 한 일을 갖고 침소봉대하거나 떠든 적이 결코 없었다. 오랜 뒤 인종차별을 반대했던 자신의 행위에 대한 스포츠 기자와 친구들의 질문을 받고 매우 당황한 스미스 감독은 “올바른 일을 했다고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다만 올바른 일을 그냥 하면 된다”고 말했다.

스미스 감독이 미국 대학농구에 기여한 유산과 역사는 비단 명장 타이틀에 그치지 않는다. 농구감독으로 재임하는 40여년간 농구 코트 안팎에서 많은 변화와 발전을 이끌었다. 농구 기본기에 입각한 뛰어난 지도자로서 선수들을 키워냈으며, 기독교라는 신앙 아래 탁월한 인품을 갖고 선수들의 도덕적 함양을 육성하는 데도 결코 소홀함이 없었다. 그에게 농구장은 ‘하나의 교회’였다고 할 수 있었다.

한때 감독 최다승인 통산 879승,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금메달, 두 차례의 대학농구선수권대회 우승, 11차례의 파이널 포 진출 등의 개인적 성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정한 삶을 추구하는 그의 인생 가치였다. 탁월한 경기력으로 관중들에게 스릴 넘치는 볼거리를 보여주는 것보다는 스포츠를 통해 인간적인 가치를 얻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스포츠를 진정한 덕을 쌓는 학교로 여겼던 것이 스미스 감독의 교육철학이었다.

각종 체육대회를 하면 항상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선수 대표와 심판의 선서이다. 선수들은 “페어플레이 정신으로 최선을 다하며 대회에 임할 것”을 약속하고, 심판들은 “경기 진행에 있어서 공정하고 올바른 판단으로 임할 것”을 선서한다. 선수와 심판 선서 모두 스포츠의 참된 가치를 육성으로 다짐하는 성스러운 의식이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종합 국제대회는 물론 국내 각종 전국대회와 소규모 동네대회에서도 선수 대표와 심판 선서를 항상 실시한다. 이는 고대올림픽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으로서 스포츠가 육체적인 경쟁을 통해 승부를 벌이지만 도덕적인 교육으로도 중요하다는 것을 담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쿠베르탱이 근대올림픽을 부활시킬 때, 스포츠가 평생교육의 목적으로 교육 개혁에 이바지할 것을 바랐다. 경기 규칙을 배우고, 뛰어난 경기력을 쌓고, 지는 법도 알고, 이기는 것이 능사가 아니며, 경기가 끝날 때 인정하는 법도 배우는 것이 스포츠의 참된 목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 스포츠가 프로화, 상업화로 치달으면서 각종 속임수, 승부조작, 협잡, 돈 매수, 금지약물 복용 등 스포츠의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경기력을 넘어 스포츠의 도덕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열정적인 삶을 살았던 스미스 감독의 생애가 그의 죽음 이후 주목을 받게 된 것은 그가 스포츠 사상 최고의 도덕 선생님으로 숭상할 만하기 때문이다. 위대한 스포츠 지도자가 스포츠뿐 아니라 시대와 사회에 남긴 자취는 넓고도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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