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기형도(1960~1989)
나무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했다
은백양의 숲은 깊고 아름다웠지만
그곳에서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
그 아름다운 숲에 이르면 청년들은 각오한 듯
눈을 감고 지나갔다. 돌층계 위에서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목련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
존경하던 교수가 있었으니 그분은 원체 말이 없었다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시평]
대학시절을 흔히 인생의 황금기라고 말한다. 젊음과 낭만과 또 학문이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학시절이 지닌 그 외적인 면과 함께, 이 시절은 또 다른 아픔이 자리하고 있다. 삶에의 깊은 고뇌, 혹은 지독한 가난, 그리고 현실에의 알 수 없는 저항 등. 보이지 않는 아픔이 그 내면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아프니 젊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1970년대, 80년대. 황사가 바람을 타고 불어오는 봄, 개강 철이 오면, 대학가는 시위하는 학생들과 이를 막기 위한 전경대의 최루탄이 뿌연 황사와 함께 온 대학가를 뒤덮곤 했었다. 그래서 은백양의 숲길은 아름다웠지만,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돼야 하는 아픔이 있었고, 플라톤을 읽는 도서관 옆으로는 최루탄 총성이 울리곤 했었다. 학기가 시작되고 교정에 목련이 필 무렵이면, 몇몇 학우는 군에를 갔고, 혹은 감옥으로 끌려갔고. 누구는 기관원이었다는 풍문 또한 돌기도 했었다. 그러나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젊음의 특권인 고뇌와 아픔과 낭만과 그리고 저항마저도 보장을 받을 수가 있었다. 비록 그때가 70년대, 80년대였다고 해도.
윤석산(尹錫山) 시인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