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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바랜 법복(法服) 회색으로 대표

스님이 입는 옷을 분소의(糞掃衣)라고도 한다. 한자 그대로는 ‘똥 묻은 옷’이라는 뜻이다. 말 그대로 똥 묻은 헝겊 조각을 주워 모아서 지은 옷이라는 말이다.

출가한 이는 평생 분소의만 입고 살아야 한다고 한다. 불가에서는 분소의는 탐심(貪心: 탐내는 마음)을 삼가기 위해 검소함을 닦는다는 뜻으로 입는 법복(法服)이다. 이것이 비구가 입어야 할 본래의 의복이라고 한다.
이 외에도 율장(스님의 행동강령을 기록한 것이라고 이해하면 될 듯)의 의건도에는 시체를 싸서 화장터에 내다버린 총간의(塚間衣)를 분소의로 들고 있는데 비구들이 서로 다투어 취하였기 때문에 공평하게 나누어 입었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다. 또 비구들에게 “분소와 시장에 떨어져 있는 헝겊은 원하는 만큼 갖도록 하라”고 한 기록도 있다. 이는 상점의 문밖에 버려진 헝겊도 분소의와 같은 범주에 속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겠다.

또한, 비구 중에는 귀족, 부호 출신도 많았는데, 그 비구가 주워가기 쉬운 곳에 헝겊을 두고서 주워가도록 하는 일까지도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이러한 일들은 후대에 생긴 일들이며, 처음에는 출가의 원칙적인 의생활은 분소의에 의지하는 것이었다.

승가의 최초기에 붓다가 우루벨라에서 배화교도의 우두머리인 우루벨라 등 가섭 3형제를 설복, 교화한 일을 기록하는 가운데 부처님의 분소의를 얻어서 이를 세탁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리고 이때 석제환인(釋帝桓因)이 붓다를 위하여 석지(石池)와 장소를 마련했다고 한다. 즉 성도 직후 부처님의 옷은 분소의였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비구의 옷을 가사(袈裟, kasaya)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괴색이라는 의미이며 가사로 한다는 것은 천한 색으로 물들이는 것으로 이를 색천(色賤)이라고 한다. 색천을 할 때 색의 배합은 율장에 따라서 여러가지로 표현이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모란색(木蘭色), 니색(泥色) 또는 천색이었다.

오늘날 남방불교 비구의 옷은 황색인데, 이는 색천의 색 중 천색 계통이 아닐까 한다. 또 분소의는 원래 조각조각 찢어진 천을 붙여서 만든 것이다. 시의의 경우도 그와 유사하도록 만들어서 착용했다. 긴 헝겊과 짧은 헝겊으로 잘라서 서로 잇대어 깁는다. 이를 색천에 대하여 도천(刀賤)이라 한다. 즉 도천은 길고 짧은 헝겊 조각을 계속 잇대어서 조포(條布)로 만들고, 그것을 몇 조각이든 가로로 잇대어 깁는다. 그렇게 해서 다 만들어진 옷은 조각의 수에 따라서 몇 조라고 칭한다.

예컨대 중국, 한국, 일본에서는 삼의 중에서 하의를 긴 헝겊 한 장과 짧은 헝겊 한 장을 1조로 하여 다섯 조를 합하여 5조 가사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상의는 대개 7조, 외의는 9조에서 25조까지인데, 7조 등의 각 조는 양장일단(兩長一短)이 아니면 삼장일단을 만들고 있다. 이 도천의 방식은 부처님이 논에 심어진 벼의 정연한 모습을 보고서 정한 것이라고 한다. 갠지스강 유역에는 논농사가 발달해 있었으므로 어쩌면 그것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보다는 도천이나 색천으로 미루어 볼 때, 비구 본래의 삼의가 분소의였다는 점에서 유래한 것으로 생각된다. 율장에는 옷감으로써 가치를 없게 하여 보는 사람들이 도심(盜心)을 일으키지 않도록 삼의에 색천과 도천을 하였다 한다. 또한 부처님은 분소의가 내버려진 것이므로 ‘얻기 쉽다’고 하는 효용성을 서술하고 있으며 “분소의거나 시의거나 만족할 줄 알면 된다”고 하였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요즘 한국불교에서 우리가 흔히 보는 스님들의 옷 색깔에서 회색 부분은 장삼이라고 부르는 부분이고 붉은색이나 갈색처럼 된 것은 위에서 이야기한 어깨에 걸치는 가사라는 것이다. 그래서 통상 스님들의 옷을 분소의 혹은 가사와 장삼으로 통칭한다. 회색은 바로 장삼에 해당되는 것이며, 낡고 오래되어 색이 바래서 회색인데, 이 시대에 와서는 회색으로 대변하게 되었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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