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김영복 원장
조선 후기의 정치가, 외교관, 통역관, 실학자로 북학파의 거두인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 1750. 11. 5~1815. 4. 25)가 쓴 ‘북학의(北學議)’는 조선 사람들의 소고기 편식을 비판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나라에  다른 가축이 없어서, 소 도살을 금지하면  딱히 먹을 고기가 없어진다고 걱정하지만 천만에! 소 도살을 금지한 뒤에 백성들에게 다른 가축 사육에 힘을 쏟게 한다면 우리나라에서도 필시 돼지와 양이  번성하게 될 것이다.”

한편 “황성(皇城) 안에 돼지고기 파는 가계가 일흔두 곳, 양고기 파는 데가 일흔 곳인데, 날마다 한 곳에서 돼지고기, 양고기가 각각 삼백 마리씩 팔린다. 고기를 이처럼 많이 먹지만 쇠고기를 파는 곳은 두 군데밖에 없다. 이것은 내가 고기 파는 사람에게서 자세히 물어서 안 것이다.” 여기서 황성(皇城)은 북경을 말한다.

“어떤 사람은 돼지와 양이 우리나라 습성에 맞지 않아 먹으면 병이 생길 것이라 걱정하던데
이것도 천만에! 음식은 자꾸 먹어야 습성이 생기는 법이다. 중국 사람들이 돼지나 양을 먹는다고  병에 걸렸던가?”라고 기록돼 있다.

세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조선의 임금이 신하에게 말린 돼지고기(乾猪)를 하사 했다는 기록도 나온다. 여기서 말린 돼지고기 건저(乾猪)는 한반도에서 익숙한 산물이 아니다.

서북 유럽지역과 중국의 서북지역에서 주로 말린 돼지고기를 만들어 먹는데, 서북 유럽의 경우 돼지고기가 쉽게 부패하므로 이를 장기간 먹기 위해 기본적으로 돼지고기에 소금으로 염장(鹽藏)해 다시 훈제한 후 말리면 수년 동안 부패를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중국의 경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즉 돼지고기를 상하지 않게 건조하려면 염장과 훈제는 필수이다. 이러한 말린 돼지고기 건저(乾猪)가 만들어 지는 지역이 실록에서 경기도, 경상도, 평안도, 함경도라 기록하고 있다.

유럽 지역에서 수제로 만들어지는 말린 돼지고기 햄은 무척이나 비싸다고 한다. 이토록 비싼 산물이니 조선의 임금이 신하에게 말린 돼지고기 건저를 하사했던 것이다.

조선 숙종 45년(1719년), 영조 20년(1744년), 광무 5년(1901년)의 고종 50회 생일잔치 기록인 ‘진연의궤(進宴儀軌)’와 순조(1800~1834) 때 집필된 ‘진찬의궤(進饌儀軌)’에도 저포탕(猪胞湯)과 저육탕(猪肉湯)이 등장한다.

조선 왕의 일상음식 격식이 기록된 자료로 정조 19년(1795년) 왕 일행의 수원 행궁 원행시(園幸時) 음식격식에 대한 기록을 정리한 ‘정리의궤(整里儀軌)’뿐이다. 이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 보면 저육(豬肉), 생저육(生豬肉), 숙저육(熟豬肉), 저포와 저포탕이 등장한다.

궁중의 저포는 돼지의 태반(胎盤)이다. 이를 찜한 것이 저포(猪胞)이며, 탕(湯)을 끓인 것을 저포탕(猪胞湯)이라 한다.

태반이 아닌 태중(胎中)의 어린 새끼돼지가 ‘애저(哀猪)’다. 이것이 곧 애저찜(哀猪蒸), 애저탕(哀猪湯)이다.

1670년(현종 11년)경 정부인(貞夫人) 안동 장씨가 쓴 조리서 ‘음식디미방’을 보면 돼지고기 조리법은 야저육(野猪肉, 맷돼지고기) 삶는 법이 2줄, 가저육(家猪肉, 집돼지고기) 3줄이 전부로, 간단하게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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