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관사 태극기 (사진제공: 은평역사한옥박물관)
사찰서 발견… 국내 유일 사례
일장기 ‘거부’ 그 위에 덧그려
청·적색 태극… 리·감 위치 바껴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1919년 3월 1일을 기리는 ‘삼일절(3.1절)’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일제의 탄압이 거셌던 1919년대에 독립운동가들은 태극기를 몰래 제작해 품에 숨기고 다니며 독립 의지를 불태웠다. 이러한 독립운동의 물결은 사찰 등 불교계로도 이어졌다.

특히 오는 25일부터 은평역사한옥박물관(관장 황평우)에서 전시되는 사찰 진관사의 ‘진관사 태극기’는 일장기 위에 그려 당시 일본에 대한 강한 저항의식을 엿볼 수 있다.

‘진관사 태극기’는 2009년 진관사 칠성각(서울시 문화재자료 제33호) 해체 복원 조사 중 불단과 기둥 사이에서 발견됐다.

발견된 태극기는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색이 변하고 왼쪽 윗부분이 불에 타 약간 손상됐지만 형태가 완벽하게 보존돼 있다. 가로 89㎝, 세로 70㎝, 태극의 직경은 32㎝이다.

이 태극기의 4괘는 현재의 국기와 비교하면 리·감의 위치가 바뀌어 있다. 이는 1942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회가 제정한 국기 양식과 동일하다. 또 태극은 청·적색이고, 현재의 국기를 뒤집어 놓은 모습이다.

1919년 독립운동 현장에 쓰였던 태극기로 추정된 ‘진관사 태극기’는 우연히 발견되기까지 90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벽 속에 숨겨져 있었다.

황평우 관장은 “진관사의 독립운동 유물의 발견은 일제강점기 불교계의 독립의지와 항일투쟁을 새롭게 재조명하는 계기가 됐다”며 “애국선열의 숨결이 느껴지는 독립운동사 자료로서 매우 귀중한 유물”이라고 전했다.

▲ 독립신문 제30호 (사진제공: 은평역사한옥박물관)
불교계 중심의 항일 운동 엿봐

진관사 태극기는 여러 관점에서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 사찰에서 태극기가 발견된 유일한 사례로 알려졌다. 또 진관사에서 나온 항일독립운동신문과 태극기 등 독립운동 관련 자료는 일제강점기 한국불교계 항일운동의 자취를 보여 주는 생생한 자료다.

항일투쟁을 불살랐던 당시에 사찰 내에서도 인적이 드문 칠성각에 비밀스럽게 태극기와 독립운동 자료를 숨겨놓은 점은 불교계를 중심으로 벌어지던 일본에 대한 저항 운동이 얼마나 절박하게 전개됐는지를 대변해주고 있다.

또 놀라운 사실은 진관사 태극기는 일장기(日章旗) 위에 덧그려졌다는 점이다. 이는 일장기를 거부하고 일본에 대한 강한 저항의식을 표현했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황 관장은 “그 당시 서슬 퍼런 일제 치하에서 일장기 위에 태극기를 그렸다는 점은 참으로 엄청난 담력을 갖고 행한 일이므로 놀랄 만하다”고 전했다.

이 태극기 속에는 3·1운동 직후 국내에서 발간된 ‘지하신문’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간행된 신문이 둘둘 말린 채로 함께 발견됐다. 이들은 모두 태극기와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어 독립운동사에서도 태극기 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은평역사한옥박물관 전시에는 ‘신대한(新大韓)’ 3점, ‘독립신문(獨立新聞)’ 2점, ‘조선독립신문(朝鮮獨立新聞)’ 5점, ‘자유신종보(自由晨鍾報)’ 3점, ‘경고문(警告文)’ 1점이 진관사 태극기와 함께 전시된다.

▲ 강릉 선교장 태극기 (사진제공: 은평역사한옥박물관)
강릉 선교장서 나온 독립운동 태극기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은 사찰 진관사 칠성각에서 발견된 1919년경의 태극기와 함께 강릉 선교장 태극기도 ‘진관사·강릉 선교장의 독립운동 태극기’ 전시를 통해 선보인다.

강릉 선교장(우리나라 최대의 한옥)에서 발견된 태극기는 구한말인 1891년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가로 154㎝, 세로 142㎝ 크기의 이 대형 태극기는 고종이 하사했거나, 이강백 강릉 선교장 관장의 증조부인 이근우 옹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태극기는 1908년 당시, 강릉 선교장 내 동진학교에서 사용되던 2개의 태극기 중 하나다. 일제 탄압으로 학교가 문을 닫은 후 광복될 때까지 땅속에 묻어뒀다가 광복 후 하나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기증했고, 남은 하나를 강릉 선교장에서 보관해 오다 최근 공개했다.

실제 이 태극기는 동진학교의 기념사진에도 남아있는 유서 깊은 태극기로, 현재 근대문화재 등록이 예고돼 있다. 이번에 처음으로 외부에 공개한다.

한편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이 광복 70주년과 3·1절을 맞아 여는 이번 특별전에는 백범 김구 선생이 독립운동가들을 남몰래 물심양면으로 도운 당시 강릉 선교장 주인 이돈의 선생의 공을 치하하는 뜻으로 직접 내린 휘호 ‘天君泰然(천군태연)’와 함께 독립운동가 백초월 선생도 재조명한다. 전시는 오는 4월 30일까지 개최된다.

기획특별전 기념으로 3월 1일 일요일 오후 2시에는 한철호(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의 강연 ‘진관사 태극기의 역사적 형태와 의의’가 은평역사한옥박물관 교육실에서 진행된다. 신청은 은평역사한옥박물관 홈페이지에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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