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집트 시위자가 16일(현지시각) 카이로에 열린 집회 중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콥트교도 참수에 항의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출처: 뉴시스)

반기문 “종교지도자 힘 필요” 조만간 특별행사 개최 방침
오바마 “IS는 테러리스트… 이슬람과의 전쟁 아냐” 강조

[천지일보=정현경 기자] “폭력적 극단주의에 대처하기 위해 조만간 유엔에서 종교지도자 회의를 개최하겠다.”

지난 19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폭력적 극단주의 대처를 위한 정상회의’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한 말이다.

이날 백악관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세계 각국 대표단이 참석해 최근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등 폭력적 극단주의에 대처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이 자리에서 반 총장은 “IS나 보코하람과 같은 국경을 초월한 신세대 테러 단체의 출현은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보에 중대한 위협이라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다”면서 “이를 막기 위한 첫 번째 실천 계획으로 수개월 내에 종교지도자 간 상호이해를 증진시키고 결속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특별행사를 주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반기문 총장은 폭력적 극단주의를 방지하려면 그 근원이 되는 문제를 다뤄야 하고 인권을 신장하려는 노력이 병행돼야 하며 전 지구적인 도전이라는 인식 아래 전면적이고 총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세계 각종 종교의 지도자들을 한데 모아 이슬람국가(IS) 등이 준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18일 정상회의 기조연설에서 “IS는 자신들을 종교지도자나 성전(聖戰)을 수행하는 전사 등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그들은 종교지도자가 아니라 테러리스트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우리는 그들이 내세우는 어떤 주장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모두 거짓이기 때문”이라면서 “어떤 종교도 폭력이나 테러를 용납하지 않는다”며 IS나 보코하람 등 이슬람 테러 세력에 대항하는 전쟁의 당위성을 부각시키려 노력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테러리스트(IS)들이 10억 이슬람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이슬람과 전쟁을 하는 것도 아니다. ‘문명의 충돌’이 있다는 논리를 조금이라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며 “현재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끼리 충돌하고 있다거나 미국과 서방이 무슬림을 억누르거나 그들과 전쟁을 벌이려 한다는 식의 거짓말을 배격할 책임이 무슬림 사회, 특히 종교지도자나 학자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와 문화권 사이에서는 물론이고 같은 국가나 종교 안에서도 더 많은 대화가 이뤄져야 테러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며 “(중동, 아프리카 등 일부 사회가 불안한 곳에서) 사람들이 부패와 불의로 인한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극단주의에 물들게 된다”고 지적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서방과 이슬람 지도자들이 서로 협력해 이들 극단주의자의 거짓 주장을 물리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이슬람 지도자들을 포함한 동맹국과 협력해 IS를 반드시 격퇴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IS 격퇴에 수니파도 동참

수니파를 중심으로 ‘칼리프(이슬람의 정치·종교지도자)국가’ 수립을 표방하고 있는 IS는 타 종교에 대한 탄압이 극심하다. 지난 15일에는 북아프리카의 새로운 IS 거점지인 리비아 시르테에서 납치한 이집트 콥트교인 21명을 집단 처형하는 동영상을 공개해 세계를 경악케 했다.

IS는 동영상에서 참수된 이들을 가리켜 ‘굴욕적인 콥트교회의 신봉자들’이라고 지칭하며 이번 참수가 콥트교도에 탄압받는 무슬림 여성에 대한 복수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콥트교도에 박해받는 무슬림 여성으로 2004년과 2010년 이슬람 개종 여부로 논란이 됐던 카밀리아 셰하타 자키르와 와파 콘스탄틴을 꼽았다. 이집트 콥트교 목사의 아내인 이들은 행방불명됐다가 얼마 뒤 모습을 드러냈다.

이를 둘러싸고 콥트교 측에선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납치해 개종을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슬람 측에선 자발적으로 개종하려는 이들을 콥트교에서 감금하고 고문했다고 맞서면서 종교 간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콥트교는 성 마가(Saint Mark)가 서기 50년쯤 알렉산드리아 근처의 바우칼리스에 세운 기독교 공동체를 중심으로 발전한 이집트의 자생적 기독교이다. ‘콥트(copt)’라는 말은 ‘이집트인’을 뜻하는 그리스어 ‘아이깁토스(Ai-gyptos)’에서 유래한 것으로, 콥트교 신자는 전 세계에 500~1500만명으로 추산되며 주로 이집트와 수단에 분포돼 있다.

IS가 콥트교도 21명을 참수한 동영상을 공개하자 이집트는 즉각 보복을 천명하고 다음날 리비아 해안의 IS 거점을 공습했다. 수니파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중동 국가들도 IS를 맹비난했다.

앞서 IS가 요르단 전투기 조종사를 화형해 IS를 공습했던 요르단은 “(이날 테러는) 종교와 상관없으며 (IS의 콥트교도 참수는) 이슬람과 관련 없는 범죄이자 테러 행위”라고 규탄했다. 요르단 하원은 지역적, 국제적 차원의 대테러 노력 강화를 촉구했다. 리비아 의회도 성명을 통해 콥트교도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IS와 싸워나갈 수 있도록 국제사회의 지원을 요청했다. 아랍에미리트(UAE)와 이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도 IS의 이집트 콥트교도 참수를 비난했다.

◆콥트교 지도자, IS 용서 메시지

반면 콥트교 지도자는 IS의 만행에 관용을 베풀어 눈길을 끌었다.

영국 콥트교 앙가엘로스 총주교는 참수 동영상이 공개되자 ‘희생자와 가족들, 억류자들을 위해 기도하자’는 글을 트위터에 올리며 ‘#FatherForgive’라는 해시태그를 달았다. ‘신은 용서하신다’라는 뜻이다.

앙가엘로스 총주교는 20일(현지시각) CNN과의 인터뷰에서 “기독교도이자 성직자로서 나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용서의 길을 안내할 책임이 있다”며 “극악무도한 그들의 행위는 용서하지 않았지만 참수한 사람들은 진심으로 용서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분노와 증오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고 세상은 폭력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앙가엘로스 총주교는 IS가 ‘콥트 십자군이 이슬람으로 개종하려는 여성을 박해했다’는 이유로 콥트교도를 참수했다고 주장한 데 대해서는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이라며 “폭력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이것이 그들이 찾은 이유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IS 리비아 지부는 20일 리비아 동부 꿉바에서 3건의 연쇄 자살폭탄 테러를 저질러 45명이 숨졌다. 사고 직후 IS는 “테러는 우리의 소행이며 16일 이집트와 리비아 공군이 동부 항구도시 데르나를 합동 공습한 것에 대한 보복”이라고 주장했다.

콥트교도 참수 동영상에서 서방을 기독교 십자군에 비유했던 IS는 자신들이 로마의 남쪽에 있다며 가톨릭의 중심 로마를 정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상 속 IS 조직원은 “우리는 알라의 허락과 예언자 무함마드의 약속에 따라 로마를 정복할 것”이라고 말해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사회가 잔뜩 긴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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