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구로구 구로공구상가에서 작업복 제작 업체인 성일상사를 운영하고 있는 표영태(58) 대표. 그는 불우한 가정환경을 극복하고 ‘사회적 기업가’의 꿈을 이뤄 현재 기부, 봉사, 문학 등의 다양한 기부활동을 펼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불우한 가정환경 극복하고 ‘사회적 기업가’의 꿈 이뤄
궂은 날씨에도 10년간 매주 일요일 환경지킴이 봉사
밑반찬 나눠주기 봉사하던 중 구로구청으로부터 강제 중지당해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우리 사회에서 자신을 위해 쓰는 돈은 끔찍할 정도로 ‘짠돌이’면서 어려운 이웃을 도울 때는 적극 아끼지 않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서울 구로구 구로공구상가에서 작업복 제작 업체인 성일상사를 운영하고 있는 표영태(58) 대표는 그중 한 명이라 감히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주변으로부터 기부에서만큼은 통이 크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발 비용을 아끼기 위해 머리카락 면도를 미용 전문가도 아닌 딸에게 부탁하는 가하면, 지출을 아끼기 위해 가급적이면 뭐든 재활용을 한다. 그리고는 어렵거나 소외된 가정을 위해서라면 선뜻 나서 통 큰 기부를 한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인 사랑의열매에는 고액기부자로 올라 있을 만큼 돈을 기부하는 일에는 180도 달라진 모습의 기부천사가 된다.

그가 이같이 사랑의 기부천사가 된 데는 다름 아닌 어릴 적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 어려운 사람의 심정과 고통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표 대표는 외아들로 태어났고, 그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전 일본에 돈 벌러 갔다가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이 때문에 그의 어머니는 그가 초등학교 1학년 때 가족을 버리고 집을 나갔고, 표 대표는 그때부터 친척집에 얹혀살면서 눈칫밥을 먹어야 했다.

때문에 그는 배고파도, 필요한 것을 사야 할 때도, 또 사고 싶은 게 있어도 늘 참고 눈치를 봐야 했다. 그는 이런 과정을 겪은 것을 오히려 행운이라 말한다. 이 같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남들보다 느끼는 것이나 눈치가 빠르고 어려운 사람들의 심정을 잘 알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그는 중·고등학교 시절 생활기록부 장래희망 란에 사회적 기업가가 되고 싶다고 적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직업은 사업가이면서 또한 어려운 사람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사회적 기업을 운영함으로써 이익의 재분배와 환원을 통해 밝고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고 다짐했던 것이다.

표 대표는 고교 졸업 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당시 공고생들을 우대하던 시기라 대기업에 입사할 수 있었다. 그는 레크리에이션 리더로도 활동했고, 퇴근 후에는 야간대학까지 병행해 본인이 실현하고자 한 사회적 기업가가 되기 위해 계획해 갔다. 25세로 군 제대 후에는 삼성전자에서 다시 들어오라는 제의가 있었음에도 이를 뿌리치고 삼촌이 있는 구로상가로 가서 일을 배우게 된다.

표 대표는 “삼촌 가게에서 인재가 필요했던 데다가 나는 사업을 해야 한다는 결심이 있었고, 또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하는 사회적 기업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삼촌한테 가게 된 것”이라 말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포기하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고난의 길을 선택한 위대한 결정이었던 셈이다.

삼촌 밑에서 2년 정도 중장비 일을 배우다가 그는 새로운 획기적인 아이템을 떠올린다. “구로에는 없는 것이 무엇일까 떠올리다가 사회복지 차원에서도 작업복을 판매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삼촌을 어렵게 설득해 업종을 바꾸게 된다”고 말했다. 당시 작업복도 잘 팔리지 않던 시대였던 데다 기계공구 전문상가에서 무슨 옷을 파냐며 주변 만류가 심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뚝심으로 밀어 붙인 결과, 몇 년 안 돼 돈을 많이 벌 정도로 대성공이었다. 그 역시 이렇게 크게 성공할 거라 생각조차 못했고, 단지 사회복지 차원에서 좋은 아이템으로만 여기고 미래를 긍정적으로 내다본 것이 예상 밖의 대박을 쳤던 것이다. 오로지 사회적 기업을 만들겠다는 표 대표의 일념에 하늘이 그에게 행운을 안겨줬는지도 모른다.

5년간 삼촌 밑에서 일하며 크게 성공한 그는 본격적으로 사회적 기업가가 되고자 32세 때인 1989년 따로 독립해 지금의 성일상사를 차리게 된다. 여기서도 작업복 사업을 이어갔고 25년간 사업하며 남부럽지 않은 지금의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게 된다. 구로공구상가에서 그가 최초로 작업복 판매점을 차렸던 것이, 지금은 여러 곳이 생길 정도로 벤치마킹이 됐다.

 

 

▲ 1980년대 작업복이 잘 팔리지 않던 시대였던 데다 기계공구 전문상가에서 무슨 옷을 파냐며 주변 만류가 심했으나 상가에서 최초로 작업복 판매점을 차려 큰 성공을 거둔 표영태 대표. ⓒ천지일보(뉴스천지)

표 대표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대학생에게는 매년 250만원씩 기부했으며, 3년간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돼 반찬봉사 지원을 했다. 2007년 설립된 티뷰크복지재단에는 이사로 있으면서 재단을 통해 기부를 했고, 개인적으로도 여러 곳에 기부를 하는 등 사회적 기업가로서 다짐했던 것들을 아낌없이 실천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표 대표가 단지 물질적인 것만 기부하는 기부천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또 말로만 복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자 쉼 없이 활발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적은 인원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어려운 가정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만든 밑반찬을 손수 직접 갖다 주는 것은 물론 집수리 봉사까지 해주고 있다.

그런데 밑반찬을 만들어 나눠주는 봉사를 하던 중 그는 참으로 황당하면서도 어이없는 아픈 일을 경험했다. 그를 정치적으로 견제하려는 세력 때문이었는지 강제로 중지를 당했다. 신도림동 동사무소 3층 조리실에서 구로구 관할 15개동에 월 2회 320팩의 밑반찬을 만들어 무상으로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주는 봉사를 하고 있었는데, 구청으로부터 활동을 중지하라는 공문을 받았다. 이를 무시하고 계속 어려운 이들을 위해 밑반찬을 만들어 보냈는데, 어느 날 누군가 냉장고 코드를 뽑아 버린 탓에 음식이 모두 상했다는 것.

그는 “구로구청을 찾아가 누가 왜 이 봉사를 못하게 하느냐 했더니 밑도 끝도 없이 다 아시면서 라고만 답했다. 분통을 터트리면서 눈물을 한없이 흘리며 세상을 한탄했다. 지금도 생각하면 이해가 안 간다. 공무원이 봉사를 하지 말라고 공문을 보낸다는 게 말이 되나. 구청이나 나라에서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황당하기만 하다. 이유는 느낌상으로 대강 추측할 뿐”이라며 잠시 분개했다.

그 일로 잠시 봉사활동에 주춤했지만, 그는 그래도 쉬지 않았고, 여러 개의 봉사상을 받았다. 그리고 특히 매주 일요일에는 숲과 계곡을 오르며 쓰레기 줍기 등의 자연봉사까지 펼치고 있다. 10년간 눈이 오든 비가 오든 개의치 않고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작년 연말에는 자연봉사하며 일기처럼 썼던 자료를 책으로 엮어 자연사랑 에세이집 ‘함께하는 삶(문학광장 출판)’을 출간하기도 했다. 책 수익금은 100프로 다시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환원했다. 단순한 기부천사가 아닌 사랑의 기부천사인 셈이다.

 

 

 

▲ 매주 일요일 쓰레기줍기 자연봉사를 하면 이같이 10자루가 넘는 쓰레기를 담게 된다. 무게로만 따지면 1톤이 넘는 양이다. 앞줄 오른쪽 4번째가 표영태 대표의 모습 (사진출처: 티뷰크사회복지재단 블로그)

 

▲ 표영태 대표가 작년 연말 출간한 자신의 자연사랑 에세이집 ‘함께하는 삶’을 아내 김정숙씨와 다정하게 맞잡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또 그는 요즘은 새로운 분야에서 수준 높은 복지를 계획하고 있다. 예를 들어 탈북자들에게 일자리를 알선하는가 하면,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문학작품 공모를 해 상금도 기부하고 정신적인 문화적 감성도 키워주는 새로운 형태의 복지를 준비하고 있다.

표영태 대표는 “돈 쓰는 재미 중 기부하는 뿌듯함이 가장 크다. 또 나눔은 생명이다. 나눌 수 있을 때 세상은 아름다워진다”며 청양의 해인 올해에도 기부와 봉사를 결코 쉬지 않는다.

 

 

▲ 올해에도 쉬지 않을 표영태 대표의 기부와 봉사 활동 모습이 역시나 기대된다.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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