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일 오전 열린 동국대 이사회가 무산되자 이사장 정련스님이 동국대 총장선출과 관련한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스님이사들과 재가이사들이 무더기로 불참하면서 회의장이 텅 비어 썰렁한 분위기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이사장 정련스님, 총장선출 외압 비판 “자승스님 참회하라”
이사회 “이사장이 고의로 총장선출 기피” 이사회 불참·파행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명백하게 말씀드립니다. 지난 12월 11일 있었던 일은 어떤 말로도 비켜갈 수 없는 동국대학 총장선출에 대한 외압이고 위협이었습니다.”

조계종 외압 논란으로 위상이 크게 떨어진 동국대 이사회를 이끄는 이사장 정련스님이 참회하며 이 같이 밝혔다. 총장선출 과정에서 종단외압 논란으로 내홍을 겪고 있는 동국대 이사회가 또다시 무산됐다. 이사 9명이 무더기로 불참한 것이다.

동국대 차기 총장선출 과정이 이사회 무기한 연기로 안갯속에 빠졌다. 동국대 이사회는 11일 오전 10시 제289회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재적이사 13명 가운데 4명만이 참석해 결국 성원미달로 열리지 못하고 간담회 형식으로 진행됐다. 텅 빈 회의장에는 기자들만이 가득해 썰렁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어렵게 말문을 연 이사장 정련스님은 미리 준비한 입장문을 통해 총장선거가 중단된 현 동국대 사태에 관해 신랄하게 비판하며, 종단 집행부 스님들의 참회와 이사스님들의 과감한 결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동국대 이사장 정련스님은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된 지난해 12월 11일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서 총무원장 자승스님을 비롯한 종단 대표들과 김희옥 총장 그리고 자신이 만난 일에 대해 소회를 밝혔다.

▲ 11일 오전 동국대살리기 비상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손피켓을 들고 총장후보 보광스님의 사퇴 등을 촉구하고 있다.ⓒ천지일보(뉴스천지)

◆외압 당사자 대중 앞에 참회부터

정련스님은 “코리아나호텔에서 겪었던 일은 개인적으로 모욕감과 자멸감을 느껴 잠을 이룰 수 없어 날밤을 꼬박 지새우기도 했다”며 “어떤 말로도 비켜갈 수 없는 동국대 총장선출에 대한 외압이고 위협이었다”고 성토했다. 조계종 원로의원이기도 한 정련스님은 동국대 사태를 겪으며 느꼈던 참담한 심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이어 외압 당사자인 현 집행부 핵심 인사들에게 사과와 참회를 요구했다. 정련스님은 “자승 총무원장을 비롯한 동국대학 주요 소임자 스님들이 자신과 김희옥 총장에게 행한 태도와 언행은 보통의 상식을 훨씬 뛰어넘는 부당한 권력행사에 다름이 아니었다”며 “분별력을 상실한 행위로 발생된 문제를 풀어가는 순서는 당사자들이 먼저 학교구성원과 대중들 앞에 분명하게 사과하고 참회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님은 또 “조계종단과 동국대 이사스님들은 사회의 법과 질서를 존중하고, 학교구성원들을 깊은 자비와 애정으로 이끌어 선대가 건립한 동국대를 발전시켜야하는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며 “더불어 학교 이사장과 이사라는 자리를 사유화하고 이를 이권화하면서 종단정치에 학교를 끌어드린다면 동국대는 영원히 나락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결단을 촉구했다.

◆종권에 굴하면 승단·학교 신뢰 급추락

동국대의 공공성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뜻도 내비쳤다. 정련스님은 “동국대는 법적으로 독립돼 운영되고 있는 공공기관”이라며 “(종립학교라 할지라도) 사립학교의 자주성과 공공성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무너지면 국가의 법령을 위반하는 것이고, 학교 공동체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스님은 총무원장 자승스님과 이사스님들을 향해 “총무원장 스님은 부당한 종권을 행사하고, 이사스님들은 이러한 압력에 굴복해 총장선임의 이사회 권한을 저당 잡힌다면 학내구성원과 대중의 뜻과 요구를 배반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또한 “총장후보인 보광스님에 대한 본 조사 결과(논문 30편 중 18편 표절)를 보고받고도 총무원장이 결정하고 주문(스님총장 선출)한 사항이니 이사의 숫자로 밀어붙이고, 힘으로 해결하고자 한다”면 “결국 학교공동체는 갈가리 찢어지고 말 것이다. 승가공동체조차도 사회적 지탄과 저항을 견뎌내지 못하고 서서히 또는 급속도로 추락해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11일 오전 서울 동국대학교에서 제47대 총학생회와 제31대 일반대학원 총학생회 관계자들이 총장 선거개입 관련자 처벌과 선거 원천적 재실시 등을 촉구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동창·학생회 ‘보광스님사퇴·재선거’ 촉구

이에 대해 이사회에 불참한 스님들은 성명을 내고 “이사장이 총장선출 안건 상정을 미루다가 나중에는 안건 말미에 넣어두는 등 고의로 총장선출을 기피했다”며 “다수 이사의 의견을 무시하면서 이사회를 파행으로 이끌고 있어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고 반박했다.

이날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표절의혹 논문에 대한 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박정극 위원장은 “표절의혹이 제기된 논문 30편에 대한 조사결과 2편은 표절, 3편은 심각 중복게재, 13편은 약한 중복게재, 12편은 허용 가능 중복게재로 판명났다”고 보고했다.

총장후보자 보광스님의 논문표절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이미지가 크게 실추됐다. 이로써 총장선거가 사실상 무산됐다는 우려와 함께 재선거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동국대 총학생회와 총동창회는 같은 날 이사회 전후로 기자회견을 열고 “종단의 선거 개입으로 공정성과 자주성이 훼손됐다”며 총장선거 재실시를 촉구했다.

총동창회로 구성된 동국대학교살리기비상대책위원회는 “승려이사들의 단합으로 이사회가 파행됐다. 이 모든 사태의 근간에는 조계종 총무원장의 책임이 있다”며 자승스님의 사과를 요구했다. 또한 “조계종 자승스님을 비롯한 스님들의 총장 후보자 사퇴 압력은 ‘슈퍼 갑질’이고 외압”이라며 “총장 후보자 보광스님은 논문표절 의혹이 드러났으니 사퇴하고 최소한의 양심과 명예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총학생회와 일반대학원 총학생회 학생들도 교내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종단의 선거개입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학교 자주성이 훼손된 데 이어 여러 이권의 개입으로 사건의 본질마저 흐려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학생들은 “모두가 힘을 합쳐 종단 개입을 막아내고 민주적인 총장선거를 다시 치러야 한다”면서 종단 개입 관련 인사 처벌과 보광스님의 후보 자진 사퇴,총장후보자추천위원회에 학내 구성원 참여 확대 등을 요구했다.

동국대 차기총장을 선출하는 이사회가 무기한 연기되면서 일각에서는 동국대 사태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외압 논란으로 안갯속에 빠진 이번 사태를 두고 조계종 집행부와 동국대이사회가 어떤 해법을 제시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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