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고대 로마제국이 천년 넘게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식민지 국가에 대한 관용 덕분이었다. 지금의 프랑스인 갈리아 등 로마가 정복한 나라의 사람일지라도 공을 세울 경우 시민권을 주었다. 시민권을 받은 식민지 사람들은 로마에 살지 않더라도 로마 시민과 똑같은 권리를 행사했고 이 때문에 자신들도 로마 시민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아득한 시절 이야기이지만 지금도 많은 유럽인들이 스스로를 로마의 후손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은 그와 같은 로마의 식민지 동화 정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까지 치고 들어가 제국을 건설한 몽골도 지배 국가에 관용적인 태도를 보였다. 몽골제국의 왕이었던 칭기즈칸은 정복한 나라의 문화와 기술은 물론 인재라 여겨지면 조건 없이 받아들여 국가의 자산으로 삼았다. 종교도 마찬가지였다. 지배층 상당수가 기독교를 믿었지만 불교와 이슬람 등 모든 종교를 인정하고 공존시켰다. 종교 토론회를 통해 다른 종교에 대해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때문에 종교로 인한 갈등이나 반목은 찾아볼 수 없었다.

몽골제국의 업적 중 하나는 동서양을 연결하는 교역로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고려에서부터 유럽까지 역참을 연결하는 교역로를 만들어 동서양을 소통시켰다. 중국의 자랑거리인 종이와 화약, 나침반은 물론 고려의 인쇄술도 이때 유럽으로 전파됐다. 코리아라는 이름이 유럽에 알려진 것도 이 즈음이었을 것이다. 동서양을 연결하는 교역로를 통해 유럽의 페스트가 들어오는 바람에 몽골제국이 순식간에 멸망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일본이 야만 국가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외국 문화에 대한 관용 덕분이었다. 일본 천하통일의 주역 중 하나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서양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종교적인 갈등이 있긴 했지만 서양의 앞선 문물을 과감하게 받아들였다. 덕분에 조총 등 신무기를 받아들여 군사력을 키웠고 이를 앞세워 일본 최초의 해외 침략인 임진왜란을 일으킨 것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를 마감하고 일본의 통일을 완성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서양의 문화에 대해 더욱 개방적인 태도를 보였다. 영지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 대신 해외 무역을 통해 부를 창출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중국 대륙까지 영지로 삼기 위해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 때문에 임진왜란에서 패배하고 만신창이가 되면서 큰 충격을 받았고 그것이 그를 각성케 했을 것이다.

얼마 전 끝난 아시안컵 축구대회 덕분에 국민들이 오랜만에 신이 났다. 슈틸리케 감독이 부임 4개월 만에 위기의 한국 축구를 구해낸 것은 관용적이고 합리적인 태도로 선수를 선발했기 때문이다. 학벌이나 지연 등을 따지지 않고 실력만으로 선수를 선발했고 그것이 적중한 것이다. 히딩크 감독이 2002년 월드컵에서 4강 신화로 우리들을 환호하게 만들었던 것도 공평무사한 선수 선발 덕분이었다.

나라의 살림을 이끌어 갈 새 리더를 뽑는다며 온 나라가 시끄럽다. 축구대표팀도 감독에 따라 분위기가 천지 차이다. 나라의 리더라면 말할 것도 없다. 국민들이 두 눈 뜨고 지켜보고 있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고 했다. 이번에는 망사(亡事)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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