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의 국왕실’ 태조 이성계 어진 봉안 모습 (사진제공: 국립고궁박물관)
임금의 초상화 ‘어진’… 태조 어진 총 26점 제작
화재로 소실된 ‘홍포본’ 복원 모사도 최초 공개
국립고궁박물관 ‘조선의 국왕실’ 새 단장해 개관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초상화를 가장 많이 남긴 왕으로 알려졌다. 이성계는 함경남도 영흥에서 태어났다. 자는 중결(仲潔), 호는 송헌(松軒), 본관은 전주다. 고려말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 도총중외제군사(都摠中外諸軍事), 삼군도총제사(三軍都摠制使) 등을 지낸 뒤 1392년 공양왕(재위 1389∼1392년)을 양위시키고 조선을 세워 태조가 됐다. 태조 이성계의 재위 기간은 1392년부터 1398년까지로 불과 6년밖에 되지 않는다. 연로한 나이에 왕좌에 오른 것도 있지만, 태조 말년에 자식들이 벌이는 골육상잔의 권력 다툼에 스스로 왕위에서 물러났다. 때를 직감이라도 한 것이었을까. 태조 이성계가 어진을 많이 남긴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어진은 ‘임금의 초상화’를 부르는 말로, 도사(圖寫), 추사(追寫), 모사 등 크게 3종류로 나뉜다. 도사는 임금이 생존해 있을 때 궁중 화원이 직접 얼굴을 보면서 그리는 것이며, 추사는 승하한 후 살아있을 적의 임금에 대한 기억에 의존해 그리는 방식이다. 따라서 어진은 임금의 실제 모습을 담은 초상화다.

조선시대에 태조 이성계의 어진은 총 26점이 제작됐다. 하지만 현재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경기전(사적 339호) 경내의 어진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어진이 현존하는 유일본이다.

보물로 지정됐다가 국보 제317호로 승격된 태조 이성계 어진은 조선 후기 화가 조중묵(趙重默)이 낡은 원본을 그대로 새로 옮겨 그린 것으로, 태조는 임금의 상복(常服)인 익선관(翼善冠)에 청색(靑色) 곤룡포(袞龍袍)를 입고 용상(龍床)에 앉아 근엄함을 자아낸다.

조중묵은 어깨와 앞가슴에 황룡을 수놓은 청포(靑袍)를 입고, 용상(龍床)에 정면을 바라보며 앉은 태조의 모습을 공식적인 어진도상(御眞圖像) 형식으로 그렸다. 입체감을 나타낸 익선관과 얼굴을 음영법으로 표현한 이 작품은 조선 전기 초상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 홍룡포 태조 어진(홍포본) 복원 모사도 (사진제공: 국립고궁박물관)
최근 국립고궁박물관이 상설전시관 ‘조선의 국왕실’을 새롭게 단장하고 지난 10일 재개관한 전시에서 ‘홍룡포 태조 어진(紅龍袍 太祖 御眞)’ 복원 모사도를 최초로 공개했다.

모사도는 2013년에 제작된 것으로, 이번 재개관 전시를 통해 처음 공개됐다. 제작된 모사도는 화재로 소실된 태조 어진(홍포본)을 영흥 준원전의 태조 어진 사진자료와 전주 경기전의 태조어진을 토대로 홍룡포를 입은 태조 모습으로 복원한 것이다.

박물관은 전시관 정비를 위해 먼저 전시 진열장에 저반사 유리를 설치해 관람을 방해하는 유리 반사율을 최소화했다. 또 고급 사양의 조명을 도입해 유물의 보존성을 높이고, 동시에 조각과 아름다운 문양을 세밀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전시 환경을 개선했다.

새롭게 개편된 전시실에서는 500년 역사를 이어온 조선 왕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전시는 제1부 ‘국왕의 존엄과 일생’, 제2부 ‘조선 왕조의 기록과 계승’, 제3부 ‘조선의 왕도정치’로 구성됐다.

▲ ‘조선의 국왕실’ 어진 봉안 모습(위)과 선원전 재현 공간 (사진제공: 국립고궁박물관)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