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 진정한 지도자란 어떤 모습인가를 한 번쯤은 고민하게 만드는 사건이 연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다름 아닌 요르단의 압둘라 2세 국왕의 리더십이다.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은 자국 조종사를 산 채로 불태우는 동영상을 공개한 ‘이슬람국가(IS)’에 즉각적으로 대규모 공습을 선포했다. 만일 요르단 왕실이 말로만 대규모 공습을 선포한 것에 그쳤다면 IS에 대한 보복전 정도로만 알려졌을 것이다.

요르단 왕실을 비롯한 압둘라 국왕이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그가 IS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즉각적으로 내보인 행동들 때문이다. 압둘라 국왕은 실제 전투에 참가한 것은 아니지만 직접 전투기를 조종하는가 하면,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전쟁 지역을 찾아가 장병들을 격려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라니아 요르단 왕비도 IS보복 집회에 동참하는 등 요르단 왕실이 IS에 대한 반격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 요르단 국민들로부터 우호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의 리더십이 전 세계 네티즌을 열광시키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는 일명 ‘압둘라 신드롬’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 다수의 네티즌은 압둘라 국왕의 단호한 리더십을 국내 정치 지도자들이 본받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으며, 심지어는 진정한 국왕을 가진 요르단 국민이 부럽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와 같은 반응은 사회‧정치 지도층 인사들의 병역 기피 문제가 유독 많은 우리의 현실을 대변하는 것으로, 이는 또한 다수의 국민이 나라에 전쟁이나 위기가 닥치면 사회 지도층이 먼저 도망갈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 원인이기도 하다.

우스갯소리로 정치인이나 사회 지도층의 자녀들은 유독 건강이 안 좋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런저런 여러 이유로 병역을 면제받거나 특혜를 받는 경우가 많다. 솔선수범을 보여야 할 위치에 있으면서 외려 여러 방법을 동원해 인생의 난관들을 좀 더 편하게 가려는 행태를 보이니 불신이 쌓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렇기에 요르단의 압둘라 국왕이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IS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보복전의 전면에 나선 것이 새롭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압둘라 2세 국왕은 47년간 요르단을 통치해온 후세인 국왕이 사망한 후 1999년 2월 요르단 국왕직에 올랐다. 후세인 국왕은 1994년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을 이룩해낸 인물로도 유명하다. 부전자전이라 했던가. 압둘라 국왕은 군인 출신으로 왕자로 즉위한 지 일주일이 안 돼 아버지의 뒤를 잇게 됐으며, 후세인 국왕의 뒤를 좇아 이스라엘과 시리아와의 회담을 주선하는 등 지역평화의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압둘라 국왕이 이번 사건과 관련 즉각적이고도 단호한 입장을 취할 수 있는 데는 그가 영국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해 영국 육군 소위로 군 생활을 한 것과 특수전 교육을 이수하고 유격대원 자격을 취득한 것도 한몫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압둘라 국왕의 아들 또한 영국에서 군인으로 활동 중이라는 글도 올라오는 등 지금 한국 네티즌들이 요르단 왕실과 국왕에 열광하는 것은 ‘노블리스 오블리주’ 다시 말해 명예만큼 의무도 함께 실천하는 모습 때문일 것이다. 군주제 국가인 요르단에서 왕실이 국민을 위해 앞장서는 모습이 지금 우리의 모습과 비교된다는 내용의 글들도 어렵지 않게 눈에 띈다.

물론 모든 정치인이나 사회 지도층이 국가와 민족의 위기 앞에 ‘나 몰라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위기 극복을 위해 앞장서는 이들 또한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런 모습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 문제다. 지도자로서 행해야 할 당연한 의무가 ‘신드롬’을 일으킬 만큼, 그 모습에 전 세계의 찬사가 쏟아지고 있을 만큼 지금 이 지구촌이, 인류가 병들어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앞선다.

IS가 이라크와 시리아를 포함한 수니파 칼리프 제도를 부활시키려는 것을 목적으로 전 세계를 공포와 분노에 빠뜨리는 테러를 자행하고 있는 것도 잘못된 종교관에서 기인한 것으로, 이는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분쟁과 갈등의 원인이 종교에서 비롯된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종교가 분쟁의 원인으로 치부되고 있지만 사실 모든 종교는 평화를 말하고 있으며 착하고 바르게 살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면 왜 극단적인 선택으로 전쟁을 야기하는 종교가 만연한 것인가. 이는 실질적으로 평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하고, 또한 평화를 이룰 자료를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종교라는 옷은 입었으되 제대로 된 경서를 갖고 있지 못함이요, 경서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교훈만 있지 약속과 성취를 말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종교로 인한 갈등과 분쟁으로 전 세계가 공포에 떨고 있고, 지쳐 있는 지금, 그토록 평화를 원하고 갈망하는 인류에 과연 누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지 눈을 크게 뜨고 찾아야 할 것이다. 또한 평화를 이룰 자료가 있다고 외치는 이가 있다면 귀를 열고 들어야 할 것이다. 진정으로 평화를 원한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토록 바라고 인류가 손꼽아 기다리는 진정한 영웅은 누구이며, 이 시대의 진정한 지도자가 누구인지 보이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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