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사단체 ‘사랑하며 나누며’ 오정현 회장. ⓒ천지일보(뉴스천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2010년 겨울이었습니다. 얼굴에서 희망이라는 것을 전혀 찾을 수 없었고, 그저 무덤덤하고 무표정할 뿐이었습니다. 사람을 기피하는 그를 보고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에게 행복을 조금이나마 되찾아줄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는 좀처럼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저런 말을 걸어봐도 돌아오는 답변은 ‘예’ ‘아니오’ 단답이었죠.

지난해 7월 공식적인 그의 후견인으로 지정된 후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됐습니다. 꽃다운 나이 18살에 12살이나 많은 남자와 결혼해 아들 둘을 낳았지만 폭력적인 남편 때문에 이혼을 하고야 말았던 사연을요. 그는 지체장애 1급, 정신연령은 7~8세 정도로 현재 초등학교 4학년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그가 돈을 벌기 위해 취업했던 사업장 주인은 그의 명의로 차를 마련해 험하게 사용했습니다. 과속 범칙금, 주차위반, 신호위반, 자동차세, 검사미필 과태료, 자동차보험 미가입 과태료 등이 부당하게 계속 청구되고 있었습니다. 후견인으로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선변호사를 선임하고 법적 소송까지 감수를 해야 하는 험난한 과정이 이어졌습니다.

어느 날 전 그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언제나 당신편입니다. 이제 후견인으로 지정 받았으니 내가 당신의 보호자입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그의 눈가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리고는 자주 자주 왔으면 좋겠다며 말문을 텄습니다. 가장 가슴이 아팠던 것은 그가 가족을 보고 싶어한다는 사실입니다. 가족들과 어렵게 연락이 됐지만 그들은 먹고살기 힘들다며 연락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오늘도 가족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 한글을 배웁니다.

(사랑하며나누며 봉사단 오정현 회장의 발달장애인 공공후견서비스 체험수기 중)

 
“아가야, 비싼 밥 사줄게 나오거라” 시아버지의 점심 초대
장애인 급식소서 값 매길 수 없는 밥 먹고 ‘봉사’에 눈 떠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남을 위해 살겠다는 것은 다짐을 했다 할지라도 생각만큼 녹록치 않다. 특히나 자기 자신에 대해 봉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던 사람이라면 더욱 더 봉사에 뛰어들기가 쉽지 않다. 평범한 주부에서 봉사인으로 변신, 이제는 발달장애인 후견인이 돼 엄마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봉사단체 ‘사랑하며 나누며’를 이끌고 있는 오정현(48, 여) 회장이다.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어요. 시아버지가 제게 전화를 해서 ‘아가야, 평생 복 받는 일이란다. 아주 비싼 밥 한 번 사줄테니 나오거라’라고 하셨죠. 정말 비싼 밥을 기대하고 갔지만, 상상 밖이었어요. 장애시설 급식봉사에 지원한 시아버지가 배식판에 밥을 담아주셨죠. 제대로 먹을 수 없었어요. 장애인들과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게…(웃음), 그런데 시아버지는 맛있게 아주 잘 드셨죠. ‘아가야, 정말 맛있단다’라고 하면서요. 지금은 아주 잘 먹지요. 이 일이 훗날 제가 봉사활동에 나서게 된 계기가 됐어요.”

생활에 큰 불편 없이 살았던 오 회장은 결혼 직후 IMF 때문에 슬럼프에 잠시 빠지게 됐고, 생활에 도움이 되고 의미있는 일을 찾다가 미용을 배우게 됐다. 그가 장애시설 봉사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게 바로 이때부터이다.

“한 번은 실습을 하다가 대상 장애인의 귀 뒷부분에 상처를 냈어요. 너무 놀라서 허둥지둥했지요. 지혈할 도구를 찾지 못해 제 내의를 찢어서 간신히 피를 닦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장애인은 아무 반응이 없는 거에요. 시설 원장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니 그는 고통을 못 느끼고 말도 할 수 없다고 했어요. 이러한 사람도 살기 위해 노력하는데, 사지가 멀쩡한 저는 더욱 열심히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또 이후 장애인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게 됐지요.”

오 회장은 장애인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었다. 그는 “우리 모두는 나이가 들면 원하지 않아도 장애인과 같이 될 수 있다”며 “장애로 인해 차별을 받거나 외면당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오 회장은 지금은 장애인 공공후견인이 되어 한 장애인의 평생을 책임지고 있다. 장애인 인권지킴이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또 장애인 외에도 노인 관련 말벗 봉사와 케어, 청소년쉼터 봉사와 상담 등을 진행했다. 그는 기독교 목회상담은 물론 탈북청소념 상담, 다문화 상담봉사 등 다양한 방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봉사활동에 뛰어들고 있었다. 봉사 관련 자격증만도 11개나 된다.

특수교육에도 관심이 많아 최근에는 모 대학 특수체육학과 편입시험도 치렀다. 탈락의 고배를 마셨지만 좌절하지 않고 다시 도전할 계획이다. 앞으로는 장애인을 위한 문화예술 교육과 인권에 더욱 집중할 예정이다. 결혼 전 현대무용을 전공하고 뮤지컬을 했던 경험을 살려 예술로써 장애인과의 소통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장애인들의 회한을 표현한 1인극이나 연극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꿈도 갖고 있다. 그는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이 사회에 소외된 이들에게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다가가고 싶다고 전했다.

“봉사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 나를 내어주는 게 아닐까요. 우리 모두가 이런 마음을 가질 때 사회가 변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오정현 회장이 장애인 시설에서 발달장애 아동 케어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 ‘사랑하며 나누며’ 오정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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