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잉여인간 이바노프’ 장면 (사진제공: 한강아트컴퍼니)
작가 27세때 열흘 만에 완성한 희곡
우울·혼란 속 현대사회 그려낸 작품
배우 이동규, 이바노프 역으로 합류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러시아 소설가 겸 극작가인 안톤 체호프는 단편작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는 말년에 불후의 희곡 작품을 대거 남겨 놓고, 1904년 당시 유명한 요양지였던 독일의 바덴바덴에서 폐결핵이 악화돼 숨을 거뒀다. 그의 시신은 러시아로 옮겨져 노보데비치 수도원에 안장됐다.

안톤 체호프의 숨겨진 명작으로, 그가 열흘 만에 쓴 희곡을 연극화한 화제의 연극 ‘잉여인간 이바노프’가 오는 4월 12일까지 대학로 아트씨어터 문에서 앙코르 공연된다.

이 작품은 비교적 초창기의 작품이고 후기작 ‘벚꽃동산’이나 ‘갈매기’에 비교하면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선입관 때문에 국내에서는 거의 공연된 바가 없다.

작품은 지난해 가을 체호프를 가장 잘 이해한다는 연출가 전훈에 의해 만들어져 대학로 소극장에서는 볼 수 없는 완성도 높은 공연으로 자리 잡았다. 올해 체호프 전용관 대학로 재개관 기념 작품으로 다시 무대에 올라 선보이고 있다.

작품은 지난해 숨겨진 4대 장막전을 통해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살고 있는 자신을 거울처럼 보게 만든 한편의 정극”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 투영되는 연극” 등의 호평을 받았다.

‘이바노프’가 1887년 초연됐을 때 안톤 체호프의 나이는 27세였다. 작가가 열흘 만에 집필 완성한 작품은 모스크바 및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대성공을 거뒀다. 체호프 작품의 방향성을 잡아주는 원석 같은 작품으로, 훗날 집필될 작품의 원형적인 인물들이 입체적으로 나타나있다.

평단에서는 “셰익스피어의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가 그의 작품 중 유일하게 잔혹한 비극인 것과 닮아있다. 지나치게 거친 플롯 위에서도 셰익스피어에게 나올 앞으로의 작품을 암시 하는 것처럼 말이다”고 작품을 평가한다.

‘이바노프’에서는 인물들의 관계도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작품 속에서 이바노프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있고, 그의 부인은 불치병에 걸려 병마와 싸우고 있다. 그런데도 이바노프는 매일 밤 외출하며 친구의 딸과 바람을 피며 재산 때문에 그와 결혼하려고 한다. 환갑이 다 된 외삼촌은 30살 연하 미망인과 연애중이며, 백작의 이름을 팔고 거액의 돈을 얻기 위한 결혼 사업을 진행 중이다. 그러던 중 지방자치회 의장의 딸인 사샤가 이바노프에게 반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희극다운 내용이다.

연극 ‘잉여인간 이바노프’는 19세기 러시아를 무대 위로 가져왔다. 세기 말에 급변하는 계급사회의 몰락과 구시대적인 결혼 풍습, 여성 해방 운동, 지식인들의 무기력함과 상인계급의 급부상 등의 문제를 텍스트에 넣어 연극을 보는 관객은 그 시대 러시아의 혼란스러운 사회 속 일원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또 무기력한 이바노프의 고뇌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과 다를 것이 없다고 느낀다.

선 굵은 연기자 이동규 ‘이바노프’ 합류

▲ 배우 이동규 (사진제공: 한강아트컴퍼니)
그동안 영화 ‘와일드 카드’ ‘기담’, 드라마 ‘골든타임’ ‘계백’ 등에서 선 굵은 연기로 대중들의 기억에 자리 잡은 배우 이동규(36)가 이바노프 타이틀 롤로 합류한다.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 연기를 전공하고 극단 애플씨어터 단원으로 다양한 인물을 소화하며 많은 무대 경험을 쌓고 연기 열정이 빛나는 배우다.

잘 알려지지 않은 실험적 영화에 출연하는 것을 선호하다 보니 최근에는 흔히 말하는 흥행실패작에 많이 출연했다. 하지만 흥행이 곧 작품성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오히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것이 연기자의 소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작품을 보고 전율이 일었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마치 내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며 “이바노프로 몇 달간 산다는 것은 정말 고통스러우면서도 새로운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배우만의 특권이자 업이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그는 감정선을 끊지 않고 롱테이크로 이어간다는 게 연극의 최고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이 맛에 연극을 한다는 그는 “거장의 작품은 대사에 몸을 맡기면 저절로 흘러가는 감정선의 쾌감이 느껴진다.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며 “더블 캐스트라 내 배역을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정말 소중한 시간이자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 좋다”고 전했다.

작품에 대해 그는 “사랑보다 조건을 보는 사업 같은 결혼, 금전문제로 깨진 우정, 결혼 이후에 찾아 온 사랑 등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주인공 이바노프만 해도 사실 우울증 안 걸려 본 사람 없을 거다. 강약의 차이일 뿐이다. 모두 다 자신의 이야기라고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대문호 안톤 체호프의 숨겨진 명작 연극 ‘잉여인간 이바노프’는 국경과 시간을 초월한 우리들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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