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계종이 지난달 28일 충남 공주의 한국문화연수원에서 연 ‘종단혁신과 백년대계를 위한 사부대중 100인 대중공사’ 토론에서 참석자들이 내놓은 아이디어들이 포스트잇에 적혀 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중생 교화할 승려 정신 없어
“못된 중 때문에 세상 시끄러워”

종단 위기의식 해법찾기 고심
“씨뿌리는 심정으로 개혁 추진”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중(僧) 정신이 없다.”

최근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이 조계종 승려들의 정신 사상과 종단의 풍토를 한마디로 정리한 발언이다. 사실상 무늬만 승려 노릇을 하고 있다는 자승스님의 이 같은 발언은 종단 안팎에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겼다.

권승(권력을 가진 승려) 집단으로 매도되는 조계종 집행부의 최고 수장인 자승스님이 자신을 비하하면서까지 왜 폭탄 발언을 한 것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쇄신을 위해 스스로 ‘죽비(불교에서 수행자를 지도할 때 사용하는 도구)’를 들었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있는가 반면 정치적인 ‘쇼’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조계종 스님과 불자 120여명이 지난달 말 충남 공주 한국문화연수원에 모였다. 종단이 개최한 ‘종단 혁신과 백년대계를 위한 사부대중 100인 대중공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100인 위원으로 이름을 올린 사부대중(스님과 불자)만 167명이며, 자승스님을 비롯한 종단운영의 핵심 수뇌부와 재가자(불자) 중에서 대표적인 인사들이 참여했다. 사부대중이 이같이 많이 모여 종단 현안과 개혁 방안을 논의하기는 유례가 없는 일이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이 꺼내 놓은 한 마디 한 마디가 사부대중을 깜짝 놀라게 했다.

▲ 조계종이 지난달 28일 충남 공주 한국문화연수원에서 연 '종단혁신과 백년대계를 위한 사부대중 100인 대중공사' 출범식 모습. (사진출처: 연합뉴스)

◆불교 50년사 사회기여도 “하나도 없다”

자승스님은 “불교가 지난 반세기(50년) 동안 사회를 위해 기여한 게 하나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스님은 “육사 생도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 바쳐 충성을 다한다는 군인 정신이 있지만 도대체 우리(승려)는 ‘중(僧) 정신’이 없다”고 탄식했다. 이어 “국민들의 상구보리(上求菩提, 위로 깨달음을 구함)만 있을 뿐 하화중생(下化衆生, 아래로 중생을 교화함)은 없다”고 쓴소리를 쏟아내며 조계종의 현주소와 풍토를 비판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출가(出家)한 승려가 속세에서 힘겹게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거나 채워주지 못하는 현 종교계의 실태를 그대로 드러낸 말이기도 하다. 도리어 국민들이 종교인들을 걱정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말이 설득력이 있다.

승려 정신을 고민해 보게 하는 불교계의 일화가 있다.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선승으로 인정받는 만암스님(1875~1957)의 일화다. 만암스님은 어느 날 갓 출가한 수산스님(1922~2012)을 불러 “중 승(僧)자를 쓸 줄 아느냐”고 물었다. 이에 수산스님은 “사람 인(人)변에 일찍 증(曾) 아닙니까”라고 답했다.

이에 만암스님은 “중이 되기 전에 먼저 사람이 돼야 한다는 뜻이다. 일찍 일어나고 부지런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도 못된 것들이 중을 하면 세상이 시끄러운 법이다. 알겠느냐”라는 스승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수산스님은 한평생 스승의 말에 어긋나지 않게 살기 위해 말과 행동을 스스로 절제하며 ‘중노릇’하려고 애썼다고 한다.

▲ 지난 2012년 5월 15일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과 소속 승려들이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 108배를 올리고 있다. 자승 총무원장은 소속 승려들의 억대 도박파문과 관련해 참회의 뜻을 밝히고 100일 동안 108배 참회정진을 진행했다(왼쪽). 고개 숙인 자승 총무원장. (사진출처: 뉴시스)

◆어려서 출가해 ‘절’ 뺏고 종단정치만 배워

자승스님은 젊은 시절의 잘못된 행동을 참회하듯 이야기했다. 스님은 “어려서 출가해 (절에서 대처승을 몰아내는) 정화한다고 절을 뺏으러 다니고 은사 스님을 모시고 종단 정치하느라 중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고 고백했다. 종단 수장으로써 하기 힘든 자자(自恣·불교의 참회 의식)성 발언까지 했다.

이 같은 자승스님의 고백은 더 이상 종단의 개혁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조계종은 세속화와 교권다툼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백양사 도박사태, 해외원정 도박, 계파정치, 선거 때마다 불거지는 돈선거, 승려폭행 사건, 음주운전 사고 등 헤아릴 수 없는 의혹과 논란으로 어수선하다. 이 모든 게 돈과 승려의 자질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크다. 여기에 출가자까지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대중공사 참석자들은 사찰 재정의 투명화, 불자 양성, 종단 신뢰 구축, 승가공동체 회복 등을 변화와 개혁 1순위로 꼽았다.

◆스스로 무너뜨린 신뢰 어떻게 회복할꼬

일각에서 ‘정치적인 쇼’라는 비판에 대해 “대중공사는 정치적인 쇼가 아니다”며 “비판 이면에 드리운 종단에 대한 강한 불신과 패배의식은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니요 우리 모두의 공업(저마다 공동으로 선악의 업을 짓고 괴로움과 즐거움의 인과응보를 받는 일)이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정치적 선입견이나 편견과 이해관계의 득실을 근원적으로 배제하겠다며, 합의된 의견은 제도화시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자승스님의 약속이 신뢰를 얻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자승스님은 사회적으로 지탄은 받은 백양사 승려들의 도박 파문 이후 사실상 불출마를 약속했지만 뒤집고 2년 전 총무원장 선거에 뛰어들어 연임했기 때문이다.

자승체제 집권 2기 종단 최대 위기 속에서 종단의 미래를 위해 추진하는 100인 대중공사 참석자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자승스님은 “지금 당장은 ‘쇼’로 보일지라도 10년 20년 후에 추수한다는 심정으로 씨를 뿌리겠다”면서 쇄신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과연 스님의 진심이 통할 것인지 아니면 하나의 치적으로 기록돼 ‘도로아미타불’ 쇼로 귀결될 것인지 안팎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