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연 건국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 화가

트리즈(TRIZ)를 만든 겐리히 알트슐러(1926∼1998)는 “기술이 진화하는 데는 패턴이 있으며 모든 분야에서 기술 진화가 같은 패턴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하였다. 생물학적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기술은 모든 분야에서 S자 곡선을 그리며 진화한다. 즉, 기술은 유아기, 성장기, 성숙기, 쇠퇴기를 거친다. 이 기술을 진화시켜 나가는 사고의 전개 방법을 패턴화시키는 것이 소위 하나의 발명기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데카르트(1596~1650)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고 말하였다. 급변하는 시대에 이를 기술 진화의 법칙에 빗대어 “진화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고 표현해 보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S자 곡선이 적용되는 곳은 기술이나 예술이나 마찬가지이다. 통섭, 융합이 회자되는 현 시대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지식은 진화시스템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해이며, 그 시스템을 생각하는 힘이다. 장난감 발명자들은 미술과 과학 분야에서 폭넓게 공부하였던 사람들이고 그들은 자신들이 공부한 결과를 발명에 활용하였다고 한다. 이는 패턴 형성이 모든 학문 분야의 경계를 넘나든다는 것을 시사한다.

제19회 청담미술제 <갤러리아 순수>의 전시에서 구연주 작가는 “유교 사상 및 태극 철학을 오방색의 유화로 표현하는 일은 동양의 생명 존중 사상을 세상에 알리는 일”이라고 하였다. 한편, 공기평 작가는 기존의 산수 풍경화에서 코믹한 요소가 담긴 ‘Funny Funny’ 시리즈를 선보이고 위성웅 작가는 캔버스 위에 유리구슬을 붙여서 몽롱한 그의 정신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전시 때마다 그들만의 새로운 진화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훌륭한 작가들의 작품이 과거와 현재의 단절과 연결 등 수많은 진화의 시행착오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음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데미안 허스트(Damien Steven Hirst, 1965~)는 종전의 엽기적이고 자극적인 개념미술에서 벗어나 ‘The Wallace Collection’에서 개인전 ‘사랑한 적 없어(No Love Lost)’와 화이트 큐브(White Cube) 갤러리에서 ‘문제 없어(Nothing Matters)’라는 제목으로 회화를 선보이고 있다. 그는 이에 대하여 “지금까지 해왔던 작업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작가로서의 변화를 추구한 것”이라고 하였다. 데미안 허스트는 스스로 진화의 패턴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평론가Charles Darwent는 혹평하였지만 데미안 허스트는 “나는 당신들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챔피온이 되겠다”고 무하마드 알리가 한 말을 속으로 하였을 것 같다. 왜냐하면 미술 진화의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 온 그가 세인의 혹평을 두려워할 위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상주의 화가인 반 고흐(Van Gogh)는 10여 년간 1000점의 그림을 그렸으나 생전에 단 한 점의 그림 밖에 팔지 못하였다. 400프랑에 말이다. 억울하게도 그가 죽은 지 100년이 지난 1990년에 그의 작품 <의사 가셰의 초상>이 8250만 달러에 팔렸는데 “언젠가는 내 그림이 물감 값과 생활비보다 더 많은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사람들이 알리라”고 고흐가 한 말이 안타깝게 들린다. 죽어서 100년 후에 크게 인정받는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진화의 패턴을 읽어 지금 인정받을 것인가? 그런 면에서 고흐에 비하면 데미안 허스트는 매우 진화한 작가다. 현재 45세인 그의 작품 10호짜리가 10억 원에 팔린다니 말이다. 현재 생존 작가로 맹위를 떨치는 미국의 제프 쿤스(Jeff Koons, 1955~)와 영국의 데미안 허스트의 꿈과 진화 패턴이 한국 작가들에게 무엇을 말해주는지 곰곰이 연구해 보아야 할 때이다.

물고기는 수천, 수만 개의 알을 낳고 나무는 수백만 개의 씨를 퍼뜨리지만 그 중에서 살아남는 것은 아주 소수이다. 결국 진화한 것만이 남는 게 아닐까? 가장 적합한 개체만이 살아남는 경쟁의 시대에 작가들은 자기 스타일만 고집하지 말고 성공한 사람들의 남다른 고민을 벤치마킹(benchmarking) 하여야 할 것이다. 자신들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꿈, 이상이 진짜 챔피온을 만드는 것이라면 체 게바라(1928~1967)가 한 말처럼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엔 항상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를 되새기면서 행복한 진화를 경험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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