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세기 말 실제로 전쟁에 참가했던 사람이 착용한 면갑 (사진제공: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상설 전시 교체로 면갑·대학장구 등 선봬
19세기 말 실제 전쟁서 ‘공군옥’이란 사람이 착용한 방어복
무게 5.5㎏에 전장후단형 배자 형태… 왼쪽에 솔기 없어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1871년 6월 강화도에서 벌어진 신미양요 때 조선군은 맨주먹으로 전투하는 것과 다름없이 여러 겹으로 겹쳐 만든 전투복만을 입고 최신식 무기로 무장한 미군들을 상대했다. 이것이 면 30겹을 겹쳐 적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만든 갑옷인 ‘면갑’이다. 더운 날씨에 면갑은 오히려 그들을 탈진 상태로 만들었지만 그들은 애국심으로 무장해 장렬히 싸웠다.

19세기 말 실제로 전쟁에 사용된 면갑이 지난 2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상설 전시된다.

이번에 공개된 면갑은 실제로 전쟁에 참가했던 ‘공군옥(孔君玉)’이란 사람이 입은 것으로 보인다. 면갑의 안쪽에 공군옥이란 먹물로 쓴 글씨가 있어 면갑의 실제 주인공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의 생애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박규수(1807~1876)의 문집인 ‘헌재집’에 그의 이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동일 인물인 것으로 판단된다.

면갑의 목둘레는 둥글고 앞길이가 길며 뒷길이가 짧은 전장후단형 배자 형태다. 왼쪽 어깨는 솔기(이음새)가 없이 한 장으로 연결돼 있고 착용을 위해 오른쪽 어깨를 텄다.

또 소매와 깃이 없고 옆선은 모두 트여 있으며 옆에 달린 고름을 매어 착용했다. 앞길이 82.5㎝, 뒷길이 75㎝, 두께 1.5㎝, 무게는 5.5㎏이다. 6개의 문양이 흑색으로 날인돼 있다.

19세기말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면갑은 면을 여러 겹 겹쳐 만들어 신식 소총으로 무장한 외국 군인들의 총탄을 막을 수 있는 방안으로 개발됐다. 조총의 탄알은 막을 수 있었으나 신식 소총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상설 전시에서는 면갑과 함께 금가루로 쓴 ‘대학장구(大學章句)’와 조선국왕이 중국 청나라 황제에게 보낸 외교문서 ‘표문(表文)’ 등도 선보인다.

두 개의 ‘표문’은 1827년(순조 27년)과 1852년(철종 3년)에 중국 청나라 황제에게 올린 것이다. 한자를 먼저 쓰고 끝에 청나라 문자, 즉 만주어를 함께 썼다. 표문에 찍힌 도장 역시 한자와 만주어를 함께 사용했다.

푸른 종이에 금가루로 쓴 ‘대학장구’도 눈여겨 볼만하다. 아교에 갠 금가루로 푸른 종이 위에 글씨를 쓰는 것은 불교의 경전을 베껴 쓰거나 부처를 그리는 등 매우 존귀한 대상을 묘사하기 위해 공경한 마음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대학장구는 중국 송나라의 주희(朱熹)가 사서(四書)의 ‘대학(大學)’에 자신의 해석을 덧붙인 책으로, 조선시대 들어와 성리학이 더욱 중요시되면서 유학의 핵심 경전인 ‘대학장구’를 공경하는 당시 사람들의 의식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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