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위원 시인

 
“유후인은 온천관광지로 유명한 곳입니다. 온천 잘하고 있습니다.” 지인이 일본에서 휴대폰으로 내게 보내온 메시지다. 지난주에 일본 규슈로 겨울여행을 떠난 그는 전날에도 구마모토 성곽을 돌면서 찍은 사진을 보내왔는데, 이번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탕에서 온천욕 하면서 여행의 피로를 풀고 있다니 부럽다는 마음이 든다. 외국에서 소식까지 전해주는데 그냥 있자니 무관심한 것 같아 필자는 “그림 좋고, 풍경 좋습니다”라고 답신을 보내주었다. 한겨울의 여행 중에서 특히 일본 여행이라면 온천욕은 필수 코스다. 그가 간 곳 규슈지방은 일본에서도 알아주고 각광받는 최고의 온천 관광지가 아닌가.

흔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 온천’이라 하면 벳푸를 떠올리지만 유후인(由布院)도 벳푸와 같은 오이타현에 있는 온천관광지로 유명한 곳이다. 유후인 온천관광지는 농산촌에 위치하고 있어 조용한 곳에서 편히 쉬기에 안성맞춤인 온천 마을로 이곳은 일본에서도 온천수 용출량이 세 번째로 많은 곳이다.

날씨가 추워지는 겨울은 사실, 온천이 그리운 계절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온천을 좋아하지만 일본인들도 지역 내에서 유명한 온천이 많아 그런지 단순한 온천욕 수준을 넘어 건강을 치유하기 위해 온천을 많이 찾는 편인데, 이른바 보양온천이다. 보양온천제도가 우리나라에서 실시되고 있지만 천질의 상태나 주변 환경 등으로 인해 일본 보양온천과는 차이가 많다.

이왕 온천 이야기가 나왔으니 덧붙여본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10년 전만 해도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그들은 내게 “전국에 있는 온천 가운데 어느 온천이 좋으냐”고 질문을 많이 해왔다. 아무래도 필자가 공직에 있던 한때에 온천의 개발, 이용에 관한 제도를 맡아서 일한 내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럴 때마다 필자는 “온천이라면 어디든 다 좋다”고 말해주었다. 50m 지하에서 퍼 올리는 일반 물도 수질 오염이 되지 않아 좋기 마련인데, 심지어 1000m 깊이에서 끌어올리는 온천수가 얼마나 좋겠느냐는 이유까지 붙여서 말해주곤 했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호황기를 누리며 잘 나가던 온천산업이 이제는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그 까닭은 주 5일 근무제 등으로 국민 여가 선용 패턴이 크게 변했고, 현대 생활에서 온천욕보다 더 나은 레저나 건강 유지를 위해 국민 취향이 다양하게 변모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따져보면 시대가 변한 탓도 있겠지만, 온천 붐이 일던 시기에 온천수 용출량을 감안하지 않고서 지방자치단체나 사업자들이 너도나도 온천 경영에 뛰어들어 물을 흐린 탓도 있다.

사례를 찾아보면 충주시 상모리에 소재한 수안보온천지구는 1980년대만 해도 인기가 많았던 곳이다. 하천에서 온천수가 나와 당시 중원군(현재 충주시)에서 온천수 관리를 하던 때에 3개 온천공에서 1일 3500톤가량 용출수를 집수 탱크에 모아 관내 이용시설에 공동급수를 했다. 그때만 해도 호텔이나 숙박시설이 적어 온천수 공급에 문제가 없었지만 그 이후 관광객들이 많이 몰리게 되자 온천지구 내 이용시설을 많이 지어 온천수 수급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온천은 과거부터 존재해왔고 사람들이 즐겨 이용한 귀중한 자원이다. 정부는 온천의 효율적인 이용 관리를 위해 1981년 온천법을 제정한 바, 그 법에서 ‘온천이라 함은 지하로부터 용출되는 섭씨 25도 이상의 온수로서 그 성분이 인체에 해롭지 아니한 것’이라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무분별한 온천개발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나라에서는 세계적으로 공인하고 있는 수온, 성분 이외에 수량을 추가하고 있다. 즉 용출량이 200톤 이상(현행 300톤 이상) 돼야만 온천으로 인정하고 있는데, 이는 지구상에서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규제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 당시 수량을 ‘온천’의 기준에 포함한 것은 국민의 건강을 고려한 조치였다. 한 사람 목욕수로 200리터의 물이 쓰이는데, 온천수 1톤으로 4∼5명이 이용하니 온천수 200톤이라면 1천명이 이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100톤은 500명이 이용할 수 있는 양이지만 온천법에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 한창 온천이 호황기를 누리던 시절 경기도 어느 지역에서 한 곳에 하루에 1만명이 몰려오던 때도 있었는데, 사용한 물을 재사용하지 못하게 한 조치였다.

이같이 제도는 이용객들의 선호, 시대 추세에 따라 변화되기 마련이다. 지금은 20여년 전에 비해 사정이 크게 달라졌으니 수량으로 온천 기준을 정한 의미가 사라졌다. 앞서 언급한 바대로 양질의 온천수 하루 100톤이면 천명이 온천욕을 즐길 수 있을 테지만 이젠 전국에 소문난 온천이라 해도 그만큼 찾아올 사람들이 없다. ‘황금 온천’ 시절을 떠올리는 잠시 옛이야기조차 가뭇한 사이 그래도 추운 겨울이 되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온천마을이 그립기는 마찬가지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