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여러모로 화낼 일이 많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화가 날 때마다 모두 다 표현했다가는 성격 파탄자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더구나 최근 ‘분노 조절’에 문제가 생겨서 자신의 파멸은 물론이려니와 다른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피해를 주는 사람들도 있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우리는 화를 무조건 참아야만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무작정 화를 참기만 하면 정신건강에 해롭다. 오래 지속되는 경우 ‘화병’에 걸릴 수도 있다. 화병이란 말 그대로 화가 적절하게 발산되지 않고 속으로 쌓여서 결국 각종 신체적 증상(가슴 답답함, 호흡곤란, 안면홍조, 피로감, 손발의 저림, 진전(떨림), 발한(땀), 소화불량 등) 및 정신적 증상(우울, 불안, 공포, 무기력감, 의욕의 저하, 안절부절못함 등)을 경험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화병에 걸리지는 않되 적절하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화를 내는 방법은 없을까?

그것은 화를 느낀 그 순간이 아니라 잠시 후 화를 내는 것이다. 즉 극도의 화난 감정이 신체적으로 나타난 다음 점차 가라앉고 있는 시점에야 화를 낸다. 화가 극도로 나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목소리가 커지며,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호흡이 빠르고 거칠어진다. 주먹이 쥐어지는 등 모든 근육이 수축해 힘이 들어가게 되며, 동공도 커지며, 입도 바짝 타들어간다. 바로 이러한 현상이 분노에 수반되는 신체적 변화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현상은 수 초 내지는 수 분 후에 사라질 수 있다. 그때 폭발적으로 말하거나 행동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이와 같이 순간적인 감정적 흥분이 가라앉은 다음에는 화난 내용을 말로써 표현해야 한다. 지금 나의 화가 가라앉은 것은 생리적 현상이 가라앉은 것뿐이지 인지적으로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를 인지적으로 잘 해석하고(‘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가?’), 이를 언어적으로 잘 표현해야겠다(“지금 그 말은 기분 나쁘게 들립니다.”).

만일 자주 화를 느끼는 상황이라면 그러한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예방에 최선을 다할 것이며, 불편한 사람과의 대화 등 화날 가능성이 있는 만남에서는 미리 시나리오를 생각하고 예행연습을 해 본다(예: 그 사람이 무례하게 굴면 나는 무슨 말을 할 것이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정말 화를 내야만 하는 경우는 한마디로 내 권리의 침해 순간이다. 내가 여태까지 지니고 왔던 권리를 누군가 빼앗거나 무시하려고 든다면 화를 내야 내 권리는 지켜질 것이다. 예를 들어서 누군가 “당신은 이제 점심시간 없이 일을 하라”는 말에 화를 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나 상대에 따라서 화를 내는 시점도 다르게 해야 효율적이다. 예컨대 상사에게 화를 낼 때는 그 순간보다는 가급적 조금 지난 다음에 화를 내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 그 순간 바로 화를 내면 상사는 자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 더욱 억압적으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화를 낼 때도 시선은 상대방을 직접 보고, 한편으로는 상대방의 표정을 살피면서 화내는 수위를 조절해야 한다. 특히 아랫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받아들이는 정도를 확인해야 하므로 더욱 잘 살펴봐야 한다. 그러나 윗사람에게 너무 뚫어져라 쳐다본다면 지나치게 도전적인 느낌을 줄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만일 순간적인 분노를 도저히 참을 수 없거나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분노의 상황을 벗어난다. 더욱 쉽게 말하자면 그 자리를 떠나라는 뜻이다.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분노 폭발이 이루어지면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라. 자녀의 방에서 자녀에게 분노를 느껴서 폭발할 것 같으면 바로 직전에 안방으로 가거나 혹은 집 밖을 나선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분노의 정점이 곧 꺾이게 되어 화가 누그러지고 다시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다. 짧은 몇 초나 몇 분을 ‘분노’라는 놈에게 길을 내주지 않는 셈이다. 그리고 숨을 크게 천천히 쉰다. 그 결과 흥분됐던 나의 몸이 다시 이완되고, 역으로 화가 난 뇌를 가라앉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즐거워서 웃는 것도 좋지만 일부러 웃음으로써 즐겁게 만들자는 말과도 같다. 화를 효율적으로 내야 낭패를 면하고, 후회할 일도 생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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