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프로야구에서 광주와 전라도를 연고지로 한 해태 타이거즈 시절에는 ‘목포의 눈물’과 ‘남행열차’가 대표적인 응원가였다. 팀 이름도 바뀌고 관중들도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흘러간 노래가 되고 말았지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명곡들이다. ‘남행열차’는 발표된 지 30년이 다 돼 가지만 여전히 노래방 인기 순위에 들 정도로 자주 불리고 있다. 하지만 ‘목포의 눈물’은 역사책에나 나올 법한 아득한 시절의 것으로 여겨질 정도로 세월이 많이 흘렀다.

김수희가 1986년에 발표한 ‘남행열차’는 1956년 손인호가 부른 ‘비 내리는 호남선’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곡으로 알려져 있다. 경쾌한 리듬으로 신바람을 불러일으키는 흥겨운 노래지만 노랫말은 ‘짠’하다. ‘비 내리는 호남선’의 ‘목이 메인 이별가를 불러야 옳으냐, 돌아서서 피눈물을 흘려야 옳으냐~’라는 가사처럼, ‘남행열차’도 이별의 슬픔을 노래하는 것이다.

‘비 내리는 호남선’은 정치적 구설에 휘말리기도 했다. 독립운동가로 국회의장을 지낸 해공 신익희 선생이 1956년 민주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유세를 하던 중 별세한 일이 있었다. 이승만이 이끄는 자유당 정권은 ‘비 내리는 호남선’이 ‘신익희 추모곡’으로 민주당의 당가처럼 불리고 있다며 작사가인 손로원을 잡아다 고통을 주었다. 어리석은 시절이었다.

그 호남선에도 3월이면 고속철도 KTX가 개통된다. 지금은 용산에서 충북 오송까지만 고속으로 달리고 광주까지는 기존의 철로로 느리게 운행하기 때문에 2시간 40분 걸린다. KTX가 완전 개통되면 서울과 광주를 1시간 30분 만에 달리게 된다. 호남선의 종착역인 목포까지는 2020년에 완공이 된다.

KTX 호남선 완공을 앞두고 광주 시민들은 기대가 크다. 하지만 고속열차 일부가 지금처럼 서대전을 거쳐 운행될 것이란 보도가 나오면서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원래는 오송에서 갈라져 공주 익산 정읍을 거쳐 광주송정으로 오가게 설계돼 있었던 것인데, 느닷없이 서대전으로 둘러 가게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32㎞나 구간이 더 늘어나고 시간도 45분이나 더 소요돼 고속철이 아닌 ‘저속철'이 되고 만다.

국토교통부와 코레일은 서대전과 논산 등의 역을 이용하는 수요를 고려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입장이라고 한다. 하지만 광주시에서 자체적으로 그 수요를 따져 보니 호남선 KTX 이용객 중 서대전역을 이용하는 승객은 불과 7%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100명 중 일곱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소수의 승객을 위해 고속철을 저속철로 만든다는 것이다. 요금도 km당 경부선의 서울~동대구 145원, 서울~부산 138원인데 서울~광주는 154원으로 알려져 지역차별이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그렇잖아도 호남선 고속철도는 2004년에 개통된 경부선에 비해 11년이나 늦게 열린다. 강산도 변한다는 그 세월을 참고 견디며 기다려 온 것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기차가 엉뚱한 곳으로 둘러서 가고 그나마 요금도 더 비싸다고 하니,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지역 차별이 여전하다고 여기는 호남 시민들 입장을 생각하면 백번 수긍이 간다.

‘비 내리는 호남선’ 이후 30년 만에 ‘남행열차’가 나왔고, 그로부터 또 30년이 지났다. ‘비 내리는 호남선’의 ‘돌아서서 피눈물을 흘려야 옳으냐’ ‘떠나가는 열차마다 원수와 같더란다’를, 지금 또 불러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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