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우리 주변에서 감동적인 사연이 있는 인물, 전문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인물을 집중적으로 만납니다. 이런 인물 인터뷰와 함께 화제가 되고 있는 내용을 집중적으로 취재하는 ‘People & Focus’를 연재합니다.

▲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위치한 ‘늘푸른나무복지관’의 모습. 지적·자폐성 발달장애인들의 치료와 교육 등을 담당하고 있다. (사진제공: 늘푸른나무복지관)

늘푸른나무복지관 고상열 관장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하는 가톨릭 수도회는 사회복지 분야에서 많은 공헌을 하고 있다. 그중 ‘천주의 성 요한 의료봉사 수도회(Hospitallers of St. John of God)’는 이름에 ‘의료봉사’라는 말이 들어가 더욱 눈에 띈다. 스페인 그라나다의 천주의 성 요한(1495~1550) 사후 설립된 이 수도회는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위한 병원과 사회복지시설 등을 세계 48개국 200여개소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는 1958년부터 광주에서 민간구호와 의료봉사 사업을 시작, 한국 진출 50년이 넘은 지금은 광주에 본부를 두고 서울, 춘천, 담양, 중국 연변, 일본 고베 등에서 각종 병원과 치료센터, 장애인복지관 등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에서는 지적·자폐성 장애인을 돕는 ‘늘푸른나무복지관(관장 고상열 수사)’과 ‘사회적기업 그라나다센터’ 등이 운영 중이다. 지난 22일 강서구 가양동에 위치한 늘푸른나무복지관을 찾아 고상열 수사에게 수도회의 정신과 복지관 운영에 대한 따뜻한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해 4월 새롭게 관장이 된 고상열 수사는 발달장애인들도 편견 없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어울리며 ‘인간답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중심이 바로 서는 복지관’이라는 비전으로 바쁘게 뛰고 있는 그는, 그 ‘중심’이란 사람중심, 소통중심, 동반성장중심이라고 설명했다. 즉, 장애인들이 우리와 다른 존재가 아니라 우리 속에서 함께 어울리며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을 지향해 나가는 것이다.

이것은 천주의 성 요한 의료봉사 수도회의 핵심 가치와도 통한다.

“우리 수도회의 핵심 가치는 ‘호스피탤러티(Hospitality)’라고 할 수 있어요. 한국말로 번역하면 ‘환대(歡待)’로 표현할 수 있지만, 원래의 뜻을 정확히 표현하기에는 조금 부족하죠. 우리나라 사람이 ‘한(恨)’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그 말뜻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한국인은 바로 알아듣겠지만, 외국인은 그 의미를 정확히 알아듣기 쉽지 않을 겁니다. 이와 같은 거죠.”

고상열 관장은 ‘의료봉사’ 수도회라는 것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의료행위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천주의 성 요한은 45세 때 그라나다(스페인 말로 ‘석류’를 뜻한다)에서 요한 데 아빌라 신부의 강론을 들으며 회심을 한다. 그러나 성당 밖으로 뛰쳐나가 큰소리로 울부짖으며 통회하는 요한을 사람들은 미쳤다고 생각해 왕립정신병원에 가두게 된다. 거기서 쇠사슬에 묶여 매를 맞으며 비인간적인 처우를 겪다 퇴원한 요한은 가난한 이, 장애인, 병자, 부랑자 등을 도우며 그들에게 인간적인 삶을 살도록 돕는 의료봉사(Hospitality)를 시작한다. 이는 육신의 아픈 것을 돕는 의료행위뿐 아니라 전인적 인간화를 뜻하는 것으로, 수도회의 기본 가치이자 사명, 존재 양식으로 삼고 있다.

▲ ‘그라나다카페’의 모습. 늘푸른나무복지관 건물에 있는 이 카페는 지역주민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일반 카페다. 다만 발달장애인들이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사진출처: 그라나다카페 홈페이지 캡처)

“수도회는 항상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도와 왔어요. 그런데 시대가 변하면서 ‘가난하고 병든 자’의 대상이 바뀌기도 했죠. ‘병원’이라는 개념도 그렇습니다. 6.25 직후 볼 수 있었던 병원의 모습과 지금 생활이 윤택해지고 기술이 발달한 현대 한국에서의 의료서비스와는 차이가 많이 나죠. 또 한국과 다른 나라와도 상황이 다릅니다.”

수긍이 가는 이야기다. 처음 한국에서 의료봉사를 비롯한 구호 사업 등을 할 때 한국은 대부분이 가난한 사람들이었고 의료시설과 서비스도 낙후됐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져 병원도 많아졌고 세계적인 의료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이 시대의 가난하고 병든 자, 소외된 자가 누군지 생각해보게 된다.

“서울에만도 장애인 복지시설이 많아요. 많은 곳에서 소외계층을 돕기 위해 애쓰고 있죠.”

고 수사는 장애인복지관 운영이 늘푸른나무복지관만의 특별한 일은 아니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소외받고 병든 자를 도와온 수도회는 늘푸른나무복지관을 통해 지적·자폐성 발달장애인을 돕고 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예전에 지적·자폐성 발달장애인은 제대로 치료도 받을 수 없었고 사회 속에서 함께 살기도 어려웠다. 늘푸른나무복지관은 발달장애인들의 치료와 교육, 직업훈련과 취업 알선 등의 일을 하고 있다. 언어, 놀이, 미술, 감각통합 진단 등 각종 치료는 18세 미만의 희망자에게 실시하며, 초·중·고등학생 희망자에게는 방과후교실로 사회적응훈련을 실시한다. 직업평가 및 진로상담도 하는데, 35세 미만의 직업재활서비스 희망자에겐 보호작업훈련을 실시하고, 지원고용 및 취업 알선은 나이제한 없이 하고 있다.

복지관에는 발달장애인들의 사회·경제적 독립을 지원하는 그라나다보호작업센터와 그라나다카페도 함께 있다. 지적장애인들이 경제적 주체로서 지역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직업능력을 개발하고 안정된 고용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마련한 곳이다.

그라나다센터는 사회적기업으로 운영하고 있다. 사회적기업은 이윤만을 위해 운영되는 것이 아닌, 취약계층의 일자리나 지역사회 발전과 같은 사회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기업으로, 현재 발달장애인 47명이 근무하고 있다. 카페 사업, 로스팅 사업, 임가공 사업, 사회재활 사업 등을 하며, 아침 10시 12분에 첫 로스팅된 원두가 나온다는 의미에서 지어진 ‘AM1012커피’ 등을 생산하고 있다.

잘 꾸며진 그라나다카페는 일반 카페와 다를 바 없다. 지역주민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고 맛있는 커피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단지 다른 카페와 조금 다른 게 있다면 발달장애인들의 일터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장애인들은 사회구성원으로서 성실히 일하며 사회 속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고 있다.

사회 속에서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종교인들의 이야기는 우리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또한 지역사회를 위한 복지시설 등은 우리 사회를 더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사회 속에서 당당하게 어울리며 함께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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