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번 발 디디면”… 청춘 얽매는 비정규직 인생 ⓒ천지일보(뉴스천지)

청년양극화, 갈수록 심화
"고용안정돼야 희망생겨”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나 아무래도 결혼 못 할 거 같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정승규(32, 남)씨가 말했다. 갑작스런 소식에 친구는 정씨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사연은 이랬다. 정씨는 올 초 여자친구의 부모님에게 인사드리러 갔다. 하지만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그 후 여자친구와도 수차례 싸웠다. 관계는 소원해졌다. 사실 그의 꿈은 공무원이었다. 하지만 공무원의 벽은 너무 높았다. 결국 일반 기업에 취업하기로 했다. 그러나 정규직도 힘들었다. 스펙부족과 나이가 많다는 이유다. 발버둥 치는 심정으로 비정규직을 선택했지만, 세상은 그를 탐탁지 않아 했다.

#.요리 강사인 김소윤(가명, 28, 여)씨는 시간제 강사다. 수입이 고정적이진 않다. 그래도 좋아하는 분야라 만족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도 고민이 있다. 결혼할 경우 출산과 육아를 위해 직장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 시간이 지나 재취업을 하고 싶어도 오랜 기간의 경력 단절로 인해 이 또한 어려운 상황이다. 김씨는 “미래 걱정에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싶지만 늘 악순환만 계속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는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자화상이다. 해가 바뀔수록 청년들이 체감하는 ‘부익부 빈익빈’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내 맘과 같지 않은 취업·결혼·환경…. 비정규직이라는 꼬리표는 청년들의 삶을 옭아매고 있다.

14일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의 ‘청년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학교를 졸업하거나 중퇴하고 처음 가진 일자리가 1년 이하 계약직이었던 만 15~29세 청년은 76만 1000명으로 전체 청년 취업자의 19.5%를 차지했다.

첫 직장이 1년 이하 계약직인 청년 취업자 비중은 2013년의 21.2%보다 소폭 낮아졌고 여전히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보다 크게 높은 수준이다.

이는 2008년 11.2%, 2009년 12.4%, 2010년 16.3%, 2011년 20.2%로 급증했으며 2011년부터는 4년째 20% 안팎 수준이다. 금융위기 이후 정규직 일자리가 단기 계약직으로 대체되는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청년층의 불안한 고용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5~29세 청년의 고용률은 40% 수준으로, OECD 평균보다 10%p 정도 낮다. 좋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취업 재수를 선택하는 청년층이 많다는 것이다.

경제적인 불안은 결혼에도 영향을 미쳤다. 결혼정보업체 듀오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20~30대 미혼자 10명 중 3명은 결혼이 자신에게 ‘사치’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같이 생각한데는 ‘경제적인 이유(44.7%)’가 가장 컸다. ‘연애 및 결혼상대의 부재(38.9%)’ ‘연령에서 오는 이유(7.8%)’ 등이 다음 순이었다.

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은 “최초 일자리를 비정규직으로 하더라도 임금수준이 올라가고 고용도 안정돼야 한다. 그래야 삶에 대한 꿈도 희망도 생긴다”며 “하지만 비정규직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이미 그의 삶은 결정이 나 버린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 시작하거나 도전하는 건 불가능하다. 삶에 대한 욕구가 생겨야 하는데 무언가를 하나둘씩 포기하게 된다”며 “정부는 비정규직의 삶의 현실을 더 자세히 파악해 노동시장의 문제점을 해결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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