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일 호주 멜버른 렉탱귤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5 AFC(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 8강전 한국 대 우즈베키스탄 경기. 손흥민이 연장 후반 두 번째 골을 성공시킨 뒤 그라운드에 쓰러져 차두리의 축하를 받고 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1996년 대회부터 2011년 대회까지 5회 연속 8강서만 맞붙어… 3승 2패로 호각지세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55년 만에 아시안컵 우승을 위해 순항하고 있는 ‘슈틸리케호’의 한국축구가 이란과의 질긴 악연을 드디어 끊게 됐다.

아시안컵 8강에서만 무려 5번이나 연속 만난 이란이 이라크에 승부차기 끝에 패하면서 4강전 맞대결은 무산된 것이다.

한국은 1956년 초대대회와 1960년 대회를 연속 우승한 이래 아직까지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했다. 1972년, 1980년, 1988년 격대회로 결승에 올랐으나 이란,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중동국가에게 계속 발목이 잡혔다.

그리고 이후로는 한 번도 결승무대를 밟지 못했는데, 그 원인에는 이란과의 지긋지긋한 8강전 맞대결 대진이 한몫했다. 1996년 대회부터 20011년 대회까지 5회 대회 연속 8강에서만 맞붙어 3승 2패로 호각지세였다.

특이한 점은 이란이나 한국이나 상대를 꺾고 4강에 진출해도 힘을 다 빼서인지 결승에는 올라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일본은 3번(2000, 2004, 2011)이나 정상에 올라 유일하게 4회 우승 기록을 보유하는 등 아시안컵 절대강자로 군림했다.

이란과의 악연은 1996년 대회부터 시작됐다. 당시 한국축구는 1986년 월드컵부터 1994년 월드컵대회까지 3회 연속 진출했고, 특히 1994년 미국대회에서 독일, 스페인을 상대로 멋진 승부를 펼쳐 아시아의 호랑이로 군림하던 때였다.

예선전부터 쿠웨이트에 0-2로 일격을 당해 1승1무1패로 어렵게 와일드카드로 진출했지만 우승 기대는 변함없었다. 8강전 상대는 이란. 1994년 미국월드컵 아시아예선에서 3-0으로 가볍게 이긴 적이 있었던 터라 4강 진출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김도훈과 신태용의 골로 2-1로 전반을 마친 한국은 후반전서 이란에게 잊지 못할 참패를 당하고 만다.

후반 6분 만에 아지지에게 동점골을 허용한 뒤 알리 다에이의 ‘원맨쇼’에 무려 4골을 더 내줘 2-6 충격적인 참패를 당한다. 이로 인해 박종환 감독은 곧바로 전격 해임되고, 대표팀 멤버들은 대대적으로 교체되는 등의 수술을 강행하게 된다. 이란은 4강전에서 사우디에 승부차기 끝에 패한다.

2000년 대회에서도 예선전부터 한국의 부진은 계속됐다. 중국과 비긴 뒤 쿠웨이트에 또다시 패해 1승1무1패로 와일드카드로 어렵게 8강에 올라 이란과 다시 만났다. 0-1로 무기력하게 끌려가다가 종료 직전 김상식의 동점골로 패배 위기를 벗어났고 연장전에서 이동국의 골로 2-1 역전승을 거뒀다.

하지만 4강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졸전을 펼친 끝에 1-2로 패해 국내 감독으로선 유일한 대안이었던 허정무 감독이 경질됐다. 이에 프랑스 출신의 트루시에 감독을 앉히고 성공을 거둔 일본을 롤모델로 삼아 우리 역시 외국인 감독 체제로 가야한다는 목소리가 대세를 이룸에 따라 히딩크 감독을 영입했고 2002년 월드컵에서 4강신화의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2004년 아시안컵에서는 예선에서 오만에게 1-3 패배를 당하는 ‘오만 쇼크’로 인해 코엘류 감독이 경질되고 후임 본프레레 감독이 이끌어 조별리그 2승 1무로 승승장구하며 8강에 올랐다. 특히 조별리그에서 계속 만나 약세를 면치 못했던 쿠웨이트를 상대로 4-0 대승을 거둬 사기가 충천해 있었다.

3회 연속 이란과 8강서 만났다. 전반부터 이란이 골을 넣으면 우리가 곧바로 반격하는 골폭죽을 주고받은 끝에 3-4로 아쉽게 패하고 만다. 이란의 알리 카리미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순항하던 본프레레호에 찬물을 끼얹었다. 하지만 이란 역시 4강에서 중국에 승부차기 패배를 당해 우리를 꺾고도 결승에 오르지 못하는 징크스는 이어진다.

2007년 아시안컵에서 8강전 또 이란을 만났다. 이때 우리 대표팀은 2002년 월드컵과 2006년 월드컵에서 한국대표팀 코치를 역임해 한국축구와 인연이 깊었던 핌 베어백 감독이 수장을 맡았다. 이란과 8강전에서 0-0 무승부 끝에 승부차기로 간신히 이겨 복수에 성공했으나 4강전에서 이라크와 0-0 무승부 끝에 승부차기로 패해 결승행은 좌절된다. 3-4위전에서도 일본과 0-0 무승부 끝에 승부차기로 이겨 겨우 자존심을 챙긴 것에 위안을 삼아야 했다. 이 대회에서 한국은 3경기 연속 승부차기에 417분간 무득점이라는 진기록을 남긴다.

2011년 아시안컵은 외국인 감독 체제 대신 다시 국내 감독으로 전환해 조광래 감독이 이끌었다. 이란과의 질긴 인연은 또다시 이어졌다. 조별리그에서 호주와 승점은 같았으나 1골차가 뒤져 2위로 밀린 탓에 이란을 비켜가지 못했다.

이란과 8강서 만나 치열한 불꽃 싸움은 역시 계속됐다. 0-0으로 정규시간 승부를 가리지 못해 연장전에 돌입했고, 승부차기까지 갈 듯 하던 승부는 연장전반 종료직전 터진 윤빛가람의 결승골로 1-0 승리의 마침표를 찍었다. 이전 4번의 8강전에서 순차적으로 번갈아가며 승리를 나눠가졌기에 순서대로라면 이란이 승리할 차례였으나, 우리가 이를 깬다. 그러나 4강전에서 일본을 만나 승부차기 끝에 패함으로써 이란과의 8강전 후유증 징크스는 지겨울 정도로 계속된다.

4년 후인 2015년 호주대회. 대회를 앞두고 조추첨식에서 이란이 바로 옆조가 아닌 건너편 조에 속하며 다행히 6회 연속 8강에서 만날 일은 피했다. 다만 한국과 이란이 나란히 조 1위를 차지해 4강에서 만날 수 있는 여지는 있었다. 하지만 8강전에서 이라크가 3골씩 주고받는 명승부 끝에 7-6 승부차기 승리를 거둬 이란을 잡아준 덕분에 한국과 이란의 악연은 6회 대회 만에 중단됐다.

이란과의 악연은 중단됐으나, 과연 한국이 이라크를 상대로 27년 만의 결승행과 함께 나아가 55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까지 달성할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 한국과 이라크의 4강전은 26일 오후 6시 호주 시드니스타디움에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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