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위원 시인

 
해가 바뀌어 희망을 다지고 웃음소리 끊이지 않을 정초부터 하늘은 회색빛으로 낮게 드리워져 있다. 우리 사회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이 어두운 소식들이니 많은 서민들이 답답해하거나 근심스러워 활기가 없다. 시기적으로도 소한을 지나 대한에 이르는 겨울 한가운데에 있으니 냉기도 차고 불어오는 바람에 몸짓이 한결 웅크려드는데, 이러한 것들이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어린이는 희망의 새싹이요, 청소년은 미래사회의 기둥’이라는 말을 철석같이 믿어왔건만 최근 5년간 초·중·고교에 다니는 학생 7만여명이 학업을 그만 두었다는 것은 슬픈 소식이다. 배움의 시기에 있는 어린 학생들이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지덕체(智德體)를 연마하면서 학부모와 사회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서 자라나야 하지만, 하루에 190명꼴로 청소년들이 학교를 떠나는 현실은 공교육의 허점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니 우리 사회의 어둠이어서 마음이 무거워져온다.

학벌사회가 만연된 우리 사회다. 평생 따라다닐 학벌을 위해 더 좋은 대학을 다니기 위해 반수(半修)하거나 재수하는 대학생 수가 매년 1만 4000여명에 이른다는 사실과 함께 또, 경기 불황으로 취업을 못해 졸업을 미룬 이른바 ‘대학 5학년생’이 최근 5년 동안 2만 7300여명 더 늘어나 그 대학생들의 마음고생이 오죽하랴만 대학 측이 등록금 납부 운운하는 것은 사회에 발을 내딛지 못한 어린 영혼들을 멍들게 하면서 학부모들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힘겹게 살아가는 샐러리맨들의 한숨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연말정산을 하게 되면 초과 납부한 기십만원 소득세 금액을 당연히 환급받으리라 생각했던 직장인들, 매년 1월이 되면 ‘13월의 보너스’를 받을 것으로 생각했던 직장인들의 기대가 산산조각 났고, 오히려 토해 내야 할 형편이 됐으니 할 말이 많다. “법인은 그냥 놔두고 직장인 세금만 늘어나 유리지갑인 샐러리맨들이 죽을 맛”이라는 샐러리맨들의 원성이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4%에서 3.8%로, 또 다시 3.4%로 자꾸 떨어지는 경제성장률 수치도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정부가 지난해 예산국회에서 올해 경제 성장률 4%를 전망하는 등 장밋빛 세상을 열더니만 슬며시 물러나, 대기업의 투자 본격화 등을 근거로 경제성장률 3.8%를 달성할 수 있다고 낙관론을 편다. 이에 한국은행은 고심 끝에 경제성장률 3.4%로 조정한 바, 그것도 상반기에는 3.0%를 보인다고 예상하고 있음은 가뜩이나 경제회복을 바라는 우리들의 마음을 어지럽게 만든다.

어찌된 일인지 정초부터 안전사고 연속이다. 의정부 화재에다가 서울의 도곡시장 불까지 올 1월 들어 2주 만에 최소 17명이 화마(火魔)로 생명을 잃었고, 188명이 중경상을 입은 한편으로 재산피해도 크다. 아무리 1월엔 화재가 많이 발생하는 달이라 해도 안전 불감증이 가져다준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한몫했다. 더 큰 화마를 불러들이는 것이 우리 사회의 단시간에 저비용 건축 같은 편의 위주와 소방도로상 무단 주차라 하니 이 또한 마음을 불안하게 만든다.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평소 검소하고 화목하게 살던 노부부가 화롯불 일산화탄소에 중독돼 숨졌다는 소식은 연로한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자식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난방이 잘 되는 아파트에 40년간 살면서 어려운 형편은 아니었지만 노부부가 난방비를 아끼려고 겨우내 방안에 화롯불을 피우고 지냈다는 사실, 더욱이 정초에 할머니의 생신을 맞아 아들딸들이 찾아와서는 추운데 난방을 하고 지내시라고 신신당부까지 했다는 말은 더욱 주변을 안타깝게 한다.

더욱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불신을 조장하고 갈등이 지속되는 현실 사회요, 위정자들이다. 계층 간, 지역 간, 세대 간 갈등이 없어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정치권에서 오히려 불신을 조장하게 되니 국민마음이야 오죽 답답하랴. 여당은 ‘친박(親朴)이네, 비박(非朴)이네’ 파벌싸움에 매달리고, 야당에서는 흩어지고 당권잡이 각개전투로 한창인데, 집권 3년차에 들어선 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집권 후 최저인 35%로 떨어졌다는 사실이 우리의 마음을 허전하게 한다. 국민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국정 모토는 소통미흡과 인사문제에 막혀 실종되려 하고 있다.

이 일들이 우리의 마음을 우울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를 우울하고 답답하게 만드는 것들이 어찌 이뿐이랴? 끊임없이 발생되는 안전사고, 황금만능주의와 재벌 2·3세들의 일탈, 어린이를 안심하고 맡길 수 없는 직장 맘들의 걱정, 자고나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아파트 전셋값, 갑질해대는 기업들의 횡포, 청년백수들의 짙은 우수 등등은 이 사회가 공정하고 안전한 사회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나게 하는 것들이다. 이 모든 게 우리의 마음을 한없이 우울하고 답답하게 만들고 있는 가운데 겨울 하늘에서 내리쬐는 따뜻한 햇볕을 우리는 아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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