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창과 쇠꼬챙이로 한국인을 살해한 일본 자경단들이 악취 때문에 코를 막고 있다. 오른쪽 흰옷을 입은 자경단은 여성 시신을 바라보고 있다. 넓은 공터에서 어떻게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폭격 맞은 사람처럼 죽을 수가 있을까. 이는 지진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학살로 죽었기 때문이란 얘기가 된다. 자료사진. (사진제공: 정성길 명예관장, 천지일보(뉴스천지)DB)
1차 조사결과 21명 희생자 확인
명부에 끔찍한 학살 상황 드러나
남북 공동조사 필요성 제기해야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희생된 한국인 피살자 명부를 정부가 나서서 검증한 첫 결과물이 나왔다.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위원회)는 ‘일본 진재(震災)시 피살자 명부’에 대한 1년간의 1차 검증을 진행한 결과, 명부에 수록된 289명 중 18명이 관동대지진 피살자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18일 밝혔다.

정부가 검증한 ‘일본 진재시 피살자 명부’는 정부에서 작성한 것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관동대지진 피살자 명부다. 약 61년 전에 작성된 기록을 정부 기관이 나서 첫 검증 조사를 벌였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명부는 이승만 정부가 지난 1953년 피해신고를 모아 만든 것으로, 지난 2013년 6월에 주일 한국대사관 신축 중 ‘일정시피징용자명부’ ‘3·1운동피살자명부’와 함께 발견됐다. 위원회는 이에 대해 지난 2014년 1월 1일부터 검증조사를 벌여 왔다.

검증조사는 제적등본 조회를 통해 희생자 신원을 일일이 교차 확인하고, 희생자 본적지를 직접 방문해 유족과 마을 주민 등 참고인 조사를 병행하는 방식이다.

특히 위원회는 명부상 피살자들의 본적지를 방문해 조사하던 중 명부에 없는 3명의 희생 사실을 추가로 밝혀냈다. 이에 총 21명의 관동대지진 희생자를 확인했다.

위원회는 지난 1년간 총 34명에 대한 조사를 벌여 21명을 피살자로 결론을 내렸고, 나머지 12명은 추가 조사가 필요해 결정 보류를, 1명은 무관한 것으로 결정했다. 또 명부상 희생자의 사망 시기는 관동대지진 전후 111명, 3.1운동 전후 45명, 1938년 이후 16명, 미상·기타 117명 등으로 분석했다.

또 명부 내용을 토대로 분류한 결과 관동대지진 당시 피살자 247명, 3.1 운동 당시 피살자 38명, 기타(자료 불충분 등) 4명으로 집계됐다. 관동대지진과 3.1 운동 피살자 명단 등이 섞인 것은 당시 정부가 3.1운동 피살자와 일정시피징용자 신고를 함께 받던 중 오류가 생겼기 때문으로 위원회는 보고 있다.

이번에 조사된 명부 수록 총 인원은 학계가 추정하는 한국인 관동대지진 피살자 수(6000명)에 크게 못 미친다. 그러나 정부가 생산한 공신력 있는 문서라는 데 의미가 있다.

명부에는 ‘쇠갈구리(쇠갈퀴)로 개 잡듯 학살’ ‘식사 중 일본인에게 곡갱이(곡괭이)로 피살’ ‘군중이 습격해 살해’ ‘일본인이 죽창으로 복부를 찔러’ 등 당시의 끔찍한 학살 상황이 여실하게 드러나 있다.

위원회 관계자에 따르면 올해 안으로 검증조사를 마무리하기가 쉽지 않다. 현재 예산과 인력이 열악하며, 분석 규모가 너무 방대한데다 피살자에 대한 지위를 보장해주는 법적 근거 마련과 남북 공동조사 필요성도 제기돼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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