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굴암 보수 전의 모습(1910년대). ⓒ천지일보(뉴스천지)

석굴암이 사진에 담긴 지 100년 만에 국내 최초 ‘석굴암 백년의 빛’이란 주제로 12월 1일부터 내년 1월 31일까지 두 달간 불교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된다.

조계종 총무원, 동국대가 공동주최하는 이번 전시회는 석굴암 사진 약 260건, 관련책자 약 1000점 등이 공개된다.

이번 사진전은 1909년 12월 세키노다다시(關野貞, 동경제대) 교수팀이 찍은 ‘석굴암 본존불’ 사진과 1912년 경주 토요켄(東洋軒) 사진관이 최초로 담은 ‘신라고적석굴암석불’ 사진첩 등 미공개 사진이 포함됐다.

성낙주(석굴암미학연구소) 소장은 전시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취지를 “석굴암이 버텨낸 근대 100년의 영광과 수모의 역사를 사진을 통해 되돌아보는 것”이라고 밝혔다.

도록을 겸한 단행본 ‘석굴암 백년의 빛’을 집필한 성 소장은 100년 전 석굴암 사진을 통해 “일본 세키노다다시 교수가 1910년 12월에 촬영한 석굴암본존불 사진은 당시 주실 지붕도 붕괴되고 전실 전각도 없는 상태를 드러낸다”며 “비과 눈바람을 맞고 10년 이상 처참했던 모습”이라고 당시를 설명했다.

그는 석굴암의 ‘햇살담론’을 비판했는데 ‘아침 햇살이 석굴암 부처님의 백호(白毫, 부처의 양 눈썹 사이에 난 희고 부드러운 털)를 비춰 그 반사된 빛이 자비광명의 세상을 밝히고’라는 식의 묘사를 지적했다.

이는 당시 석굴암이 전각을 갖춘 구조상이었기에 불가능하고, 일본이 태양신을 숭배하는 신앙적 해석을 석굴암에 투사한 식민지문화론의 흔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국어 교과서에 실린 윤희순(미술사학자)의 글 ‘토함산 해맞이’가 일제가 만든 조선총독부 교과서를 이어간 것의 흔적이라 말했다.

성 소장은 또 일본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사학자가 여러 책에서 “화창한 태양빛이 바다를 건너 굴원의 불타 얼굴에 닿았을 때… 불타와 그를 둘러싼 여러 불상이 놀라운 새벽 햇살로 선명한 그림자와 흐르는 듯한 선을 보인 것도 그 순간이었다”고 기록한 이유도 당시 석굴암 전각이 훼손됐기 때문에 가능한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성 소장은 “석굴암의 예술적·종교적 가치는 학문적 분석의 치장 너머에서 유구의 세월 동안 경이롭게 빛나고 있는 ‘미의 천체도’”라며 “이번 전시를 통해 대중과 함께 그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고자 한다”고 기대감을 타나냈다.

한편, 신라미술의 최대 석조 미술품 석굴암은 1945년 광복 이후 거의 관심이 없었고 1951년 한국전쟁 때 사진에는 새의 배설물, 이끼와 곰팡이 등으로 심하게 오염이 됐던 모습을 보여준다. 훼손된 석굴암은 지난 1962년부터 1964년까지 전면 중축했고, 1995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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