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언론인

 
평론이야 어떻든 영화 ‘국제시장’은 뼈아픈 한국 현대사를 조명해 추억을 일깨우고 눈물샘을 자극한다. 전쟁으로 고향을 떠나 부산에서 살아야 했던 아버지를 잃은 소년 가장의 얘기이며 파란의 현대사를 인동초 처럼 살아왔던 가족들의 자서전격 스토리다.

중공군의 한국전 참여로 피난을 해야 했던 소년은 흥남 부두에서 아버지를 잃고 어린 여동생과 헤어진다. 아버지는 소년에게 ‘너는 우리 가문의 장남’이라는 말을 당부하고는 피난민 길에서 행방불명 됐다. 항도 부산으로 피난 온 소년은 삯바느질로 연명하는 어머니를 도와 어린 동생 둘을 보살피는 가장으로 힘겹게 살아가야 했다.

70년대, 20대로 성장한 소년은 동생의 서울대 입학금을 마련하기 위해 파독 광부를 지원한다. 지하 수㎞의 막장에서 석탄을 캤던 파독광부들의 삶과 애환을 영화는 잘 그리고 있다.

주인공은 여기서 간호사로 독일에 왔던 여인을 만나 사랑을 하게 되고 귀국해 결혼도 한다. 갱도가 무너져 죽을 위기에 처한 주인공을 구출하기 위한 한국광부들과 간호사의 뜨거운 민족애는 이 영화의 가장 감동적인 장면으로 각인되고 있다.

주인공은 여동생 혼수를 마련하기 위해 일생의 꿈이었던 해양대학교 입학을 포기하고 또 월남 전쟁에 군속으로 참여한다. 그는 여기서 한쪽 다리를 다치게 되며, 귀국한 주인공을 바라보는 아내의 처연한 울부짖음도 숙연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흥남부두에서 잃어버린 동생을 KBS 이산가족 찾기에서 수소문해 TV를 통해 생중계되는 장면은 우리의 비극을 세계에 알린 감동적인 현대사의 재현이어서 또 울컥하게 한다.

개발사업자들로 부터 굳게 지켜온 국제시장 한 점포도 결국은 자식들과 손자들을 위해 팔아야 했던 것은 이 시대 노인들의 현주소다. 가족들에게 외면당해 골방에 갇힌 노인은 아버지의 사진 앞에서 이렇게 독백을 한다.

‘아버지, 정말 힘들었어요.’

국제시장은 우리의 얘기이며 이웃 할아버지들의 얘기이고 아저씨들, 그리고 수없이 비참하게 죽은 여러 형제, 자매들의 얘기다. 필자는 안소니퀸 주연의 헐리웃 명화 ‘25시’를 뛰어넘는 감동적 대서사시라고 후한 평가를 하고 싶다.

감독은 ‘아무 죄 없이 6.25 전쟁의 와중에서 고난을 당해야 했던 민족의 어렵고 비참했던 삶’을 세계에 고발했다. 또 이 시대 외면당하고 있는, 아무도 편 들어주지 않는, 오늘날 이처럼 잘 살게 해준, 희생당한 노인들의 삶을 진솔하게 투영, 답을 주문하고 있다. 그 해답은 무엇일까. 누가 이들을 보상 할 것이며 따뜻한 가슴으로 안아줄 것인가.

한국 경제 성장의 발판이 됐던 월남 전쟁에서 많은 군인들이 희생당했다. 살아 돌아온 참전용사가운데 생존자들은 70세를 바라보는 노인들로, 아직도 고엽제 후유증으로 병마에 시달리는 이들이 많다. 고통은 자식들에게까지 대물림 되고 있다. 우리들이 관심을 갖고 돌아보아야할 국가유공자들이며 자녀들이 아닌가.

고난의 65년, 오로지 가족들의 삶을 위해 희생 해온 노인들의 삶, 그 역사를 이해하고 존경하는 기풍을 우리 사회가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 근대사에서 고난을 극복해 온 진정한 영웅들을 무시하고 폄하한다면 그것은 자신과 역사를 무시하는 것이다.

영화는 관객 1000만명을 넘어섰다. 윤제균 감독이 또 한 번 일을 냈다.

▲ 영화 ‘국제시장’ 스틸 (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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