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장 “국보 번호, 국민 혼란 야기해 개선책 불가피”
세계적으로 국가문화재에 공식 번호 지정, 우리나라가 유일
숭례문, 조선총독부가 국보 1호로 지정… 자격 논란 지속돼
변경 후 교과서·해당 표지판 등 교체 비용 발생 ‘난관’ 예상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국보·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재에 부여한 일련번호 체계를 80여년 만에 폐지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이로 인해 숭례문 국보 1호 자격 논란과 국보 1호 교체론도 잠재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국보 일련번호 폐지 추진은 지난달 나선화 문화재청장이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를 통해 “국보에 매긴 번호가 국민에게 많은 혼란을 주고 있는 만큼 개선책 마련이 불가피하다”고 방안 등에 대한 가능성을 언급한 것에서 비롯됐다.

앞서 방화로 절반 이상 소실됐다가 5년 만에 복원한 숭례문이 화재와 부실 공사에 비리까지 얽히면서 국보 1호의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폐지 추진에 힘을 더했다.

지난해 11월,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와 (사)우리문화지킴이 등은 ‘훈민정음 국보 1호 지정을 위한 서명운동 추진위(공동대표 혜문스님, 김상철)’를 발족하고, 일련번호 교체 운동을 벌였다.

당시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의 혜문스님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국보 1호 교체 논의는 숭례문이 불타기 전부터 거론됐다. 부실과 비리로 얼룩진 숭례문에 국보 1호의 가치는 없는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1962년 숭례문에 대한 국보 1호 지정이 일제강점기였던 1934년 조선총독부가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에 따라 보물 1호로 지정한 것을 이어온 데다, 조선총독부가 숭례문을 조선보물 1호로 지정한 이유도 임진왜란 당시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한양으로 출입한 문이었기 때문이라는 연구보고가 있어 숭례문은 그간 왜색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세종대왕이 과학적이면서 가장 독창적으로 한글을 만들어 펴낸 국보 70호 훈민정음 해례본을 국보 1호로 바꾸자는 말이 나오기까지 했다. 지난해 초 나 청장은 숭례문의 ‘국보 1호 해지는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국보 일련번호 폐지 추진은 처음 나온 얘기도 아니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6년엔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숭례문이 교체 대상에 올랐으며, 2005년에는 감사원이 국보 1호를 바꾸자고 문화재청에 의견을 개진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문화재위원회의 반대에 부딪혀 번번이 무산됐다. 또 2008년 1월엔 국보에 붙은 일련번호를 모두 없애는 방안이 추진됐으나, 숭례문 화재로 문화재청장이 쫓겨나면서 흐지부지됐다.

전 세계적으로 국가지정문화재에 공식적으로 번호를 붙인 사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중국은 동산문화재의 경우 ‘진귀문물’과 ‘일반문물’로만 분류하고 번호를 따로 붙이지 않는다. 또 일본도 각각의 유물에 행정상의 분류 번호를 매기고 공식적으로는 번호를 쓰지 않고 있다.

문화재청은 국보뿐만 아니라 보물, 사적, 명승, 천연기념물, 중요민속문화재 등에 번호가 부여된 국가지정문화재를 망라해 번호 해제를 모색할 계획이다. 다만, 중요무형문화재는 사람에 관한 것이라 논의에서 제외한다는 방침이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국보 숭례문’ ‘국보 훈민정음 해례본’ 등으로 전체목록을 나열해 고시하면 효력이 발생해 절차가 간단한 편이다.

하지만 국보 등 국가지정문화재에 부여된 일련번호가 폐지되면 이에 따른 예산 비용과 인식 혼란 등을 빚을 수 있어 난관이 예상된다.

일단 국가지정문화재 표기 방식이 바뀌게 되면 교과서, 안내문 등 각종 서적뿐만 아니라 해당 문화재 표지판, 홍보지 등도 한꺼번에 교체해야 하기 때문에 막대한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또 이에 대해 국민에게 혼란을 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문화재청은 용역 결과가 나오는 대로 공청회 개최와 문화재위원회의 개별·합동 분과 등 심의를 거쳐 최종안을 확정하고, 관보를 통해 고시할 계획이다. 용역 작업은 6~8개월가량 소요될 것으로 보여 이르면 올해 내로 국보 일련번호 폐지 추진이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우리나라 국가지정문화재는 국보, 보물, 중요민속자료, 사적, 명승, 사적 및 명승, 천연기념물, 중요무형문화재로 분류하고 있다.

국보는 ‘보물급의 문화재 중 국가가 법적으로 지정한 유형 문화재’로,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에서 인류문화적 가치가 크고 유례가 드문 것, 독특하고 희귀한 것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정하고 있다. 또 보물은 건조물·전적·서적·고문서·회화·조각·공예품·고고자료·무구 등의 유형문화재 중 중요한 것을 문화재청장이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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