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역사박물관 4층 전시실에 있는 ‘흥남부두 철수 작전’ 당시 메러리스 빅토리호에 승선한 피난민들 모습을 재현한 모형 배(가운데)와 당시 피난민들 실제 사진(양쪽). 클릭하면 확대. ⓒ천지일보(뉴스천지)

마지막 작전 수행한 메러리스 빅토리호, 기네스북 등재
당시 미군 선장 레너드 라루, 죽기 전까지 수도사로 살아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보았다.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던가. 피 눈물을 흘리면서 1.4(일사) 이후 나홀로 왔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싶구나. 고향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1950년대를 살아온 누군가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굳세어라 금순아’ 노랫말이다. 1953년 발표된 노래는 지금도 국민가요로 사랑받고 있다.

최근 인기를 거듭하며 천만 관객 돌파를 앞두고 있는 영화 ‘국제시장(지난해 12월 17일)’에서 첫 번째 사건으로 ‘흥남부두 철수’를 다뤘다. 영화는 CG로 흥남부두 철수 작전 대규모 피난민 행렬을 표현하며 영화의 시작을 알린다.

▲ 메러리스 빅토리호(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전시 영상물, 왼쪽)와 레너드 라루(Leonard Larue) 선장.

◆기적의 배, 그리고 흥남부두 철수

1950년 12월 23일 흥남부두에는 살기 위해 정든 고향을 등지고 모여 나온 피난민들로 가득했다. 피난민들은 눈보라가 휘날리는 날씨에 살을 에는 듯한 추위를 체감했다. 이것이 바로 세계 전쟁 역사상 가장 큰 규모로 이뤄진 해상 작전 ‘흥남부두 철수’다.

때는 1950년 12월, 6.25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동북부 전선(함경남북도 일원)에서 작전 중이던 아군 주력 부대(국군, 유엔군)가 흥남항을 통해 대규모의 해상 철수를 단행했다. 아군은 불법 개입한 중공군이 전면 공세를 감행했기 때문에 후퇴가 불가피했다.

이 흥남부두 철수 작전에 마지막으로 투입된 화물선이 메러디스 빅토리호다. 배는 2004년 ‘단일 선박으로 가장 많은 생명을 구출한 배’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선원 60명의 7600톤급 화물선으로서 2000명 정도가 승선 한도였다. 하지만 아직도 남은 피난민들의 줄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었다.

곽홍 당시 미 해병 군의관은 타 방송 인터뷰에서 “아주 진을 치고 있는데, 몇 천 명, 몇 만 명이 넘는 줄이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미 10군단의 고문이었던 현봉학 박사의 설득으로, 미 10군단 지휘관인 에드워드 알몬드 장군과 레너드 라루 선장은 ‘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버리고, 구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을 구하라’고 지시했고, 선원들은 배에 실었던 군수물자와 무기 등을 내리고 마지막 피난민 1만 4000여명을 승선시켰다.

채후남(인터뷰 당시 98세, 생존 확인 불가, 메러디스 승선 피난민) 할머니는 “배를 타니까 모두 만세 부르고 우리는 살았다고 정말 좋아 했다”고 인터뷰한 바 있다.

마지막 피난민들을 태운 배는 흥남부두를 떠난 지 3일 만인 12월 25일 거제도 장승 포항에 도착했다. 피난민들은 영하의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서로 의지했고,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이 오히려 배 안에서 5명의 새 생명이 탄생했다.

당시 미국 선원들은 배에서 갓 태어난 아기들에게 김치 원에서 김치 파이브까지 차례로 이름을 붙여 줬는데, 마지막에 태어난 김치 파이브는 이경필씨로 아직 거제도에 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마지막 배가 떠나자 미군이 흥남 부두를 폭파시켰고, 남아 있던 피난민 약 10만명은 떠나는 배를 보며 울부짖기도 하고, 바다에 몸을 던지기도 했다고 한다. 남은 피난민들이 어떻게 됐는지 공식적으로 전해진 바는 없다.

‘흥남부두 철수 작전’은 약 10일간 10만 5000명의 병력과 1만 7000대의 차량을 비롯한 대부분의 장비와 물자를 옮겼을 뿐 아니라, 북한 피난민 9만 1000명 등을 포함해 수많은 피난민을 탈출시킨 역사적 사건이다.

한편 경상남도 거제시 포로수용소 유적 공원에는 메러디스 빅토리호 모형과 함께 흥남부두 철수 작전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레너드 라루 선장은 명을 다할 때까지 수도사로 살았다. 흥남부두 철수 사건 당시 레너드 라루 선장의 수많은 생명을 구한 현명한 판단력은 신앙인들에게서 많이 회자되고 있다.

◆천만 관객 눈앞, 영화 ‘국제시장’

▲ 영화 ‘국제시장’ 포스터
영화 ‘국제시장’은 ‘해운대’로 유명한 윤제균 감독이 5년 만에 공들여 내놓은 작품이다. 국제시장은 부산광역시 중구 신창동에 위치한 재래시장으로 1945년 광복 후, 전시 물자를 팔아 생계를 꾸려나가던 상인들이 지금의 국제시장 자리를 장터로 삼으면서 시장이 형성됐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장사를 하며 활기를 띠었고, 부산항으로 밀수입된 온갖 상품들이 이곳을 통해 전국으로 공급되며 ‘국제시장은 사람 빼고 다 외제’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한때 전성기를 누렸다.

윤 감독은 지난해 열린 개봉 전 언론시사회 기자간담회에서 “영화를 준비하며 생각했던 것보다 우리 현대사가 치열하고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각 시대별 대표적인 사건들을 넣으려 했다”며 “그중 우리나라 현대사 중 가장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한국전쟁부터 파독 광부, 간호사, 베트남 참전, 이산가족 상봉까지 큰 네 개의 에피소드를 영화의 메인 스토리로 잡았다. 영화 상영 시간이 더 길었다면 더 많은 에피소드가 들어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고 말했다.

또 “내 고향이 부산이어서 ‘국제시장’을 제목으로 정한 것은 아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가 가장 치열하게 살아온 삶의 터전을 어디로 할까 생각하다가 시장이 가장 적합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장이라는 공간이 서민들이 치열하게, 때로는 활기차게 열심히 살아가는 공간이기 때문에 시장만큼 살아 있는 공간은 없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느 시장을 할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어릴 적 추억이 담겨 있고, 1950년대 피난민들이 만들어서 번성을 하게 된 ‘국제 시장’을 주무대로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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