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있는 세월호 농성장에서 ‘유민 아빠’ 김영오(46)씨가 단원고 희생자 아이들의 이름이 적힌 트리를 바라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새해 맞은 광화문 광장 세월호 농성장
추운 날씨에도 자리 지키는 희생자 유족들
“바뀐 게 하나도 없어 안산으로 못 돌아가”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4.16 약속지킴이가 됩시다. 진상규명을 위해 서명해주세요.”

광화문광장 방향 사거리 신호등을 건너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다. 이 목소리가 들린 지 벌써 126일째다. 아이들의 사진이 붙은 플래카드를 든 자원봉사자와 유족들이 돌아가며 서명을 부탁했다. 농성장 한가운데는 아이들의 생존 모습과 사고 당시 모습들로 구성된 사진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추운 날씨에 발걸음을 서두른 회사원들이 많았지만 작은 사진전은 지나가는 시민들과 관광객의 시선을 끌기 충분했다. 한 일본인 관광객은 안타까운 목소리로 사진을 가리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아빠, 엄마, 아들, 딸로 구성된 한 가족은 서명을 한 뒤 가슴에 노란리본을 달고 돌아갔다. 권종렬(45,남)씨는 “나도 자녀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굉장히 마음이 쓰였다”라며 “유가족들이 끝까지 힘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 농성장 중앙에는 아이들의 사진과 이름이 적힌 현수막이 노란 리본과 함께 걸려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세상 돌아가는 소리로 가득한 서울 중심지에 있는 세월호 농성장 안에선 라디오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하얀 천막은 도시 매연과 눈, 비로 누렇게 변했다. 곳곳에 걸린 현수막도 잉크가 날아가 뿌옇다. 바람에 흩날리는 빛바랜 리본은 지나간 시간을 나타냈다. 새해를 맞았지만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곳은 서울의 팽목항이다.

세월호 참사 265일.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이들의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추워진 날씨 탓인지 노란 리본을 단 시민들로 북적이던 농성장에는 이제 30~40명의 유가족과 자원봉사자가 생활하고 있다.

“진상조사도 안 되고, 밝혀진 것도 없고, 특별법 제정한 거 말고는 바뀐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어떻게 안산으로 돌아갈 수 있겠어요.”

▲ 세월호 농성장이 생긴 이후부터 함께 시간을 보낸 현수막들이 비, 바람을 맞고 빛바랜 모습이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사고는 희생자 304명과 그의 가족들 1200여 명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세월호 희생자인 고 이민우군의 아버지 이종철(48)씨는 “사고 이후 내 생활 자체가 없어졌다. 아직도 아이들이 차가운 바다속에 있는데 어떻게 내가 제대로 생활하느냐”며 “무슨 계획이 있겠어. 누구를 위해 쓰려고 나가서 돈을 벌겠냐”고 한탄했다.

이씨는 “(시간이 지나니) 어떤 때는 우리만 세상하고 떨어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며 “이러다가 이대로 잊히는 거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희생자 가족들이 주장하는 것은 진실 규명이다. 이씨는 “큰 사고가 나면 나라가 바뀌어야 하는데 자기 일이 아니니 잊고 싶은 것 같다”며 “누구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정부는 이런 사고가 터졌을 때 최소한 구조는 해줬어야 하는데…, 왜 구조하지 않았는지 알려달란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야당, 여당 상관없이 밝히고자 하는 사람이 이 일을 해결할 것이다. 사건을 파헤치다 보면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 쉽게 손을 대지 못한다”며 “진실이 100% 밝혀진다는 보장이 없다. 10%, 20% 밝히면 그다음에 사건이 일어났을 때 더 쉽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

지난 7월 단식농성을 벌였던 ‘유민아빠’ 김영오(46)씨는 “이 사고가 난 후 시간이 많이 지나서 많은 사람들이 지쳤다. 그러나 우리는 바라는 것을 끝까지 이루고자 한다”며 “바로 생명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4.16을 기억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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