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지난 연말 미국 뉴욕타임스의 인기 있는 보수 논객 데이비드 브룩스가 자신이 선정하는 ‘시드니상’ 수상작 중 하나로 ‘Scavengers(썩은 고기를 먹는 동물들)’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뽑았다. 지난해 봄 시사 계간지 그란타에 실린 이 에세이는 애담 존슨의 북한 방문기로서 통제 사회인 북한의 실상을 실제 본 내용대로 전해줘 유별나고도 기이한 북한 사회의 참 모습을 알 수 있게 했다.

‘시드니상’은 다양한 언론인들의 시각을 통해 한 해 동안 정치, 문화 저널리즘에서 주목을 끈 잡지 기사들을 뉴욕타임스 독자들에게 제공해 건전하고 교훈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지난 2005년 브룩스가 존경하는 미국 현대 역사철학자 시드니 훅(1902~1989) 교수의 이름을 명명해 만든 언론상이다.

‘Scavengers'에 주목한 것은 미국인들에게는 특이한 국가이나 우리에게는 결코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관계인 북한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특히 내용의 주된 부분이 남북한에서 추앙받는 ’일본 프로레슬링의 아버지‘ 역도산에 관한 것이어서 더욱 흥미를 끌었다. 대부분의 북한 사람들은 북한 함경남도 출신의 역도산이 일본에서 프로레슬러로 활동하던 1950년대, 라이벌인 일본 선수들을 때려잡아 영웅으로 각인됐으나 이를 미워한 일본인들에 의해 암살됐다고 믿고 있다고 이 에세이는 밝혔다.

기고자인 존슨은 평양 제일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는 도중 역도산의 흉상이 새겨진 도자기로 된 북한산 청주병을 보고난 뒤 그에 대한 궁금증을 최고 명문 김일성대 출신의 북한 여성 가이드에게 물어봤다.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역도산은 유명한 조선 사람으로 어릴 적 일본으로 건너가서 모든 일본 선수들을 물리치고 챔피언으로 조선으로 돌아오기를 원했다. 하지만 성난 일본 사람들이 납치해 살해했다”고 말했다. 남자 보조 가이드도 “일본인들은 역도산을 통해 조선 사람이 더 낫다는 것을 질투하고 부끄럽게 생각했으며, 역도산이 영광스러운 사회주의 국가인 공화국으로 귀환하려 하자, 비겁쟁이들인 일본인들이 그를 죽였다”고 덧붙였다.

존슨은 흥미를 끈 역도산 청주를 11달러 주고 샀으나, 숙소인 평양 양각도 호텔로 돌아와 배에 해충이 생겨 마실 수도 없고, 비행기 휴대품 제한으로 갖고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 호텔방 싱크대에 부어 버렸다고 적었다. 후에 역도산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확인한 결과, 역도산은 미국에서도 활동했던 선수로서 나이트클럽과 호텔을 운영했으며, 1963년 한 일본인 깡패에 의해 칼에 찔린 후유증인 복막염으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게 존슨의 얘기다.

북한은 역도산이 죽은 뒤 1989년 ‘나는 한국인이다’라는 역도산 전기를 출간해 한 세대동안 북한 주민들에게 필독서로서 읽도록 했으며, 이 책의 영어판권을 역도산 청주를 판매하는 역도산 음료회사가 공동소유토록 했다고 이 에세이는 전했다.

역도산의 일생을 거짓 우상화한 북한과 달리 남한에서는 그의 실제 모습이 잘 알려져 있다. 2004년 배우 설경구 주연의 영화 ‘역도산’을 비롯해 각종 언론과 영화, 드라마, 출판물 등에서 그의 민낯이 잘 드러났다. 역도산은 탁월한 선수이자 뛰어난 사업가였다. 주먹과 힘이 쎘고 사업 수완도 꽤나 있었다. 북한이 선전하는 것처럼 강렬한 민족주의 의식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도 북한처럼 역도산을, 일본을 물리친 애국주의자, 민족주의자로 우상화했던 적이 있었다. 필자가 초·중·고를 다니던 1960년대와 1970년대, 대부분의 남한 사람도 지금의 북한 사람과 같이 역도산이 일본 사람들의 악의에 의해 희생됐다고 잘못 알고 있었다.

김일, 안토니오 이노키, 자이언트 바바 등 한국과 일본의 유명 프로레슬러를 길러낸 역도산의 개인적 삶은 남북한의 체제와 시대적 상황과 관계없이 그 실제 모습대로 역사 속에서 기록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