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춘태 중국 월수외국어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국내 대학에 영어 강의 제도가 도입된 지 10년이 됐다. 그동안 영어 강의가 일부 대학에 정착되기도 했으나 부실 강의로 얼룩져 온 면이 많다. 국내 대학에서 전공 영어 강의 제도를 도입한 시기는 2000년대 중반부터다. 이는 대학 평가의 한 준거로 영어 강의가 중요 인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대학·전공별 특성, 수강생들의 요구와 욕구, 인식도 조사, 교수·학습에 미치는 영향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도입됐다는 점이다. 한국어로 강의해야 할 전공과목마저 영어 강의를 강요하는 등 무분별한 영어 강의 제도 도입은 전공학문 정체성의 혼란, 교수·학생들 간의 소통의 어려움을 야기시켰으며, 대학의 가치마저 저평가하게 하는 요인이 됐다. 대학의 국제화 지수를 높이는 지표로 교수의 영어 강의력이 그렇게 중요한가? 영어 강의력과 지식 전달력·수용력은 별개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 대부분의 4년제 대학은 물론 전문대에서도 영어식 강의가 증가하고 있다. 한마디로 맹목적 교육 방식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국제화, 정보화시대에 공용어로 부상한 영어의 중요성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지식 전달력·수용력에서 교수와 학생 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굳이 영어 강의를 개설해야 한다면 그 당위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이는 자랑스러운 한국어가 소홀하게 다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꼴이다. 현 시점에서 우리는 통용되는 영어식 외래어, 혹은 우리 사회에 고착된 일부 영어를 함께 쓸 수밖에 없다. 그런데 덧붙여 영어 몰입 교육 정책에다가 대학 강의를 영어로 한다고 해서 국격을 높이고 성장 엔진을 가동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영어의 과도한 사용은 아름다운 우리말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 한국어는 높임법이 발달된 우수한 언어인데다가 과학적인 언어다. 그래서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인은 예의 바른 민족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한국의 선진화, 한국어의 세계화를 원한다면 가능한 한 한국어 강의가 중심이 돼야 한다.

교수 측면에서 대학 영어 강의의 문제점으로는 영어 강의가 필요하지 않았던 전공 담당​교수의 영어구사력, 영어 강의 준비에 문제가 있다. 이로 인해 지엽적인 오류가 아닌 교수와 학생 간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더욱이 교육의 부실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학습 측면에서 보면, 수강생들의 영어 이해력 부족 또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한 기관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대학생 중 40%가 영어 강의의 60%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인재로 성장하고 육성하려면 소통과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대학교육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고 국제화 표방의 성공 전략은 우리의 것을 소중히 여기고 이를 기반으로 전략을 강구해야 한다.

정부에서도 국외에 한국어의 열풍을 지속시키기 위해 정책적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어의 소중함을 가르치고 이를 널리 알려야 할 대학의 사명은 희석되고 있다. 한국어의 세계화를 위해 세계 940여개 대학과 130개소의 세종학당에서 한국어, 한국문화를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영어 강의로 인해 한국어의 정체성마저 혼탁케 할 수는 없다. 한국어 영역의 확장을 통한 문화융성을 강구해야 한다. 대학은 수강생들에게 한국어 수업, 영어 수업의 다양화를 실시하되 강요하지 말고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줘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대학의 국제화·세계화, 한국어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길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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