넝쿨 장미
박말희
목줄 끊고 집 나간 수캐가 돌아와
긴 해그림자 끌어 덮고
한잠 달게 자는 사이

자줏빛 타는 담장 꽃들을 보며
오늘 내 사랑도 꼭 저 꽃잎이었으면 싶다

돌무덤 속 그대 굳어져만 가는 마음
뻣뻣해진 오후의 담벼락을 돌아 나와

넝쿨 장미 꽃빛 끌어 덮고
한참 달게 자고 싶다

[시평]
발정이 난 수캐는 웬만한 굵기의 끈이라도 끊고 도망을 한다. 욕망이라는 것은 비록 굵고 굵은 끈이라고 해도 가두어 둘 수 없는 것인가 보다. 욕망으로 인하여, 욕망을 찾아 헤매고 헤매이다, 돌아와 이제 잠들어 있는 수캐마냥, 모든 욕망을 소진하고 돌아와 잠들어 있는 모습. 아니 이제는 모든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잠들어 있는 평안함.

때때로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적 삶을 훌훌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다. 일상의 삶 자체가 벗어버리고 싶을 만큼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욕망이라는 이름과는 상관이 없어도, 삶 그 자체가 욕망이기 때문에, 다만 그 삶만으로도 버거울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날, 삶 자체가 버거워지고 있는 그런 날. 모든 욕망으로부터 자유스러워진 단잠, 그것도 넝쿨장미 꽃빛 끌어 덮고, 한 숨 늘어지게 자고 싶음은, 비단 어느 누구만의 바람이 아니리라. 살아 있는,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욕망으로 늘 살아 꿈틀거리는 모든 존재의 바람이 아니겠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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