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아직은 혼돈하지만 왠지 그 출발이 희망차다. 특히 남과 북의 관계가 경색 국면에서 개선의 여지가 있어 보이며, 무엇보다 우리의 소원인 평화 통일로 한발 나아갈 운세라는 게 고무적이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새해 벽두부터 남과 북은 뒤질세라 앞다퉈 대화공세를 펼치고 있다. 지난달 29일 묵은해를 보내면서 통일준비위원회가 먼저 남북대화를 제의했고,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1일 조선중앙TV가 방영한 신년사 육성 연설을 통해 자신감 있는 어조로 “북남 사이 대화와 협력, 교류와 접촉을 활발히 하여 끊어진 민족적 유대와 혈맥을 잇고 북남관계에서 대전환 대변혁을 가져와야 한다”며 화답했다. 이어서 “남북 정상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며 최고위급회담 개최를 역제의 형태로 촉구하고 나섰다.

이러한 시기에 엉뚱하게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대북제재를 들고 나와 남북대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소니픽처스 해킹과 관련 미국의 대북제재가 나온 시점이 우리 통일준비위원회가 남북대화를 제의하고, 김정은 제1위원장이 ‘최고위급회담’을 언급한 직후라는 점에서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2일 휴가지인 하와이에서 대북제재를 담은 행정명령에 사인을 한 것이 이 같은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우리 통일준비위원회의 발표와 북한 신년사 이전에 이미 결정된 사항이라고 극구 해명하고 있지만, 모처럼의 남북대화 무드가 조성되는 가운데 굳이 제재카드를 꺼내들 필요가 있었느냐는 의문은 여전히 남을 것 같다.

어찌 됐든 이러한 분위기가 남북관계의 실질적 변화로 이어질까 하는 데는 몇 가지 의문은 있다. 먼저 북측은 유엔을 비롯한 한반도 주변국과 나아가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수단으로 남북대화 주문은 불가피했다고 보는 견해가 있으며, 우리 또한 지금까지의 관례로 볼 때, 신뢰성 없는 실적 위주 대북관계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겠느냐는 의문이 잔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남북대화의 진전이 우리의 의지대로가 아닌 주변국들의 상황변화에 의존해 왔고 또 의존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러한 주변국 상황 중에서도 특히 묘하게 진행되고 있는 북·중관계에 관심이 간다. 북한은 우호국 지도자들이 보내온 신년 연하장을 조선중앙TV를 통해 러시아 대통령, 중국 국가주석, 쿠바 국가 평의장 순으로 소개했으며, 시진핑 국가주석의 이름도 거명하지 않았다. 이는 지난 2009년 이후 매년 중국 최고지도자의 이름과 직책 모두를 거명해 온 것에 비하면 사뭇 이례적으로 중국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해 보이며, 나아가 북·중관계의 현주소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반면 한·중 간의 밀월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농도가 짙어지고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한·미·일 군사정보 공유 등의 공조체제와 미국의 대북제재 발표에 한국 외교부의 “적절한 대응조치로 평가한다”는 공식 논평과 같이 미국 측 제의에 지나친 협조와 협력은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카드를 다시 만지작거리게 하는 빌미로 작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될 것 같다.

괄목할 만한 것은 이상과 같은 한반도 주변 상황과 분위기에서도 남과 북은 일단 긍정적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가는 모양새다. 한국은 북한과의 대화와 제재는 별개라는 전략으로 임하고 있으며, 북한도 김정은의 신년사가 남한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고 자체 평가하는 분위기며, ‘통미봉남(通美封南, 미국과 통하고 남한은 배격한다)’에서 ‘통남봉미(通南封美)’의 전략으로 선회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해 보인다. 특히 신년사 이후 현재까지 일체의 대남 비방 방송이 사라졌다는 점은 남북대화 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게 하는 대목이다.

2015년 평화 통일의 대 기운을 맞은 이때, 주변 강대국들의 눈치 보기에서 과감히 벗어나 우리 스스로 남북관계를 주도해 나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가야 할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국들이 과연 미래의 통일 한국을 진정 바라고 원할까에 대한 의문을 한 번쯤 가져 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주변 강대국에 한반도의 미래가 달린 문제를 지나치게 의존하려는 태도는 통일 한국 실현의 의지가 참으로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할 뿐이라는 지적을 하고 싶다. 외세의 내정간섭으로 이어져 왔던 비운의 역사는 오늘날 우리로 하여금 다시는 어리석은 국민과 지도자가 돼서는 안 된다고 교훈하며 충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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