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후기 기양동자도, 동자가 흰 양을 타고 있고 그 주변에 두 마리의 양이 함께 가고 있는 모습을 표현했다. 흰 양은 신선과 관련된 그림이나 이야기에서 상서로운 이미지로 나타난다. (사진출처: 뉴시스)

12지신 양, 악신 몰아내는 장수신
온순한 성격, 평화와 순종 상징해
종교적으로도 신성한 동물로 여겨

백양사, 내장산 지명 양과 관련돼
부처, 양 비유 통해 중생들 깨우쳐
태조 이성계, 양 꿈꾸고 조선 건국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2015년 을미년(乙未年), 청양(靑羊)의 해가 밝았다. 양은 온순함과 선함, 인내심이 강해 예로부터 상서로운 동물로 여겨져 왔다. 친근하면서도 어쩐지 낯설게 느껴지는 양은 우리 생활문화 속에서 길상(吉祥)의 소재로 등장해 왔다. 양(羊)은 상서로울 상(祥), 착할 선(善), 아름다울 미(美), 희생할 희(犧)처럼 좋은 의미의 글자에 반영됐을 정도다.

친숙한 양이지만 주변에서 이를 실제로 보기는 쉽지 않았다. 목양(牧羊)이 토착화되지 못한 농경문화인 우리나라에서는 20세기 이전엔 거의 볼 수 없었다. 따라서 우리 전통문화에서 말하는 양은 털이 보송보송한 면양(綿羊)이 아니라 염소나 산양(山羊)이 대부분이었다. 민화나 민속 등에 등장하는 양은 주로 산양이나 염소이며 호랑이와 용, 말 등 다른 동물에 비해 양이 민속 문화나 문화재에 등장하는 횟수가 적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양을 포함한 우리나라의 12지신은 불교사상의 영향으로 불교를 수호하는 신장(神將, 사방의 잡귀나 악신을 몰아내는 장수신)으로 표현돼 벽사(辟邪, 요사스러운 귀신을 물리침)의 의미로 쓰였다. 양의 특성 중 하나는 무리를 지어 군집생활을 하면서도 동료 간의 우위 다툼이나 싸움을 하지 않는 온순한 성격을 지니고 있어, 양은 평화와 순종을 상징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양은 종교적으로도 신성한 동물로 등장한다.

◆재밌는 양(羊)에 관한 사찰·지명

양의 해를 맞아 최근 국토지리정보원은 재밌는 통계를 내놨다.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150만여개 지명 중 40개가 양과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중 ‘백양사(白羊寺)’에는 불법(佛法)에 감화된 흰 양과 관련한 유래가 전해지고 있다. 백양사란 이름은 하얀 양을 제도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조선 선조(7년) 때 환양선사가 영천암에서 금강경을 설법하는데 수많은 사람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법회가 3일째 되던 날 하얀 양이 내려와 스님의 설법을 들었다. 법회가 끝난 날 밤 스님의 꿈에 흰 양이 나타나 “스님의 설법을 듣고 깨달음을 얻어 업에서 풀려나 환생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음날 흰 양이 죽어 있었으며 그 이후 절 이름을 백양사라고 바꿔 불렀다.

양각사(羊角寺)가 자리한 ‘양각산(羊角山)’은 봉우리가 뾰족한 양의 뿔을 닮았다고 하여 유래됐으며, 호남 5대 명산인 ‘내장산(內藏山)’에 자리 잡은 내장사(內藏寺)도 유명하다. 내장산은 산 안에 숨겨진 것이 무궁무진하며 구불구불 이어진 계곡과 산세로 마치 꼬불꼬불한 양의 내장 속에 숨어들어 간 것 같다고 하여 지명이 유래됐다.

▲ 양을 포함한 우리나라의 12지신은 불교사상의 영향으로 불교를 수호하는 신장(神將, 사방의 잡귀나 악신을 몰아내는 장수신)으로 표현돼 벽사(辟邪, 요사스러운 귀신을 물리침)의 의미로 쓰였다. 그림은 불화 대가 만봉스님이 그린 십이지신 양. (사진제공: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불교경전 속 양의 비유

불교경전에서도 양은 여러 곳에 나타나고 있다. 부처님은 양의 비유를 통해 어리석은 중생들을 일깨웠다. ‘본생경(本生經)’에 따르면 양이 꿀 묻은 풀을 아무 생각 없이 쫓다가 결국 산지기에게 붙잡히는 장면이 나온다. 이를 왕은 “조심성 많은 양도 꿀 때문에 잡혔다”며 “실로 이 세상에 미각에 대한 욕심만큼 두려운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탐심에 사로잡힌 중생의 어리석음을 양의 비유를 통해 드러낸 것이다.

‘잡보장경(雜寶藏經)’에는 양과 여종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어느 마을에 성실하고 얌전한 여종이 있었다. 주인은 여종에게 보리와 콩을 관리하도록 했다. 여종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집에서 기르던 숫양이 보리와 콩 한 말을 먹어버렸다. 이 때문에 여종은 주인에게 의심을 받고 꾸중을 들었다. 화가 난 여종은 “내가 주인에게 꾸중을 들은 것은 모두 이 양 때문”이라고 생각해 막대기로 양을 때렸다. 영문을 알지 못하고 두들겨 맞던 숫양도 여종을 뿔로 들이받았다.

여종과 양은 극도로 나빠졌다. 어느 날 여종이 손에 촛불을 들고 있었는데 그때 양이 쫓아와 그녀를 들이받았다. 그 바람에 촛불이 떨어져 양의 털에 불이 옮겨 붙었고, 뜨거움을 견디지 못한 양은 사방으로 뛰어다녀 순식간에 마을 곳곳에 불이 났다. 산과 들에까지 불길이 번졌다. 마침 그 산에는 원숭이 500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거세진 불길을 피할 수 없어 한꺼번에 타죽었다. 양과 여종의 싸움이 마을과 산을 모두 태운 것도 모자라 무고한 생명마저 빼앗고 말았다. 서로를 미워하는 마음이 자신들뿐 아니라 그 주변에까지 나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드러낸 교훈을 담고 있다.

이와는 달리 ‘본생경’에 협동심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양의 이야기도 나온다. 한 마을 호숫가에 영양과 거북, 딱따구리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영양이 호숫가에 물을 먹으러 나왔다가 사냥꾼이 놓아둔 덫에 걸렸다. 소식을 접한 딱따구리는 거북과 함께 영양을 구해내기로 했다. 사냥꾼이 오는 시간을 지연하기 위해 딱따구리가 사냥꾼의 집 앞에서 그가 나오는 것을 방해했다. 그동안 거북은 죽을 힘을 다해 덫을 끊어 영양을 구해냈다. 하지만 거북은 지쳐 쓰러져, 영양 대신 사냥꾼에게 잡혔다.

이에 영양은 꾀를 내 사냥꾼을 유인해 숲 속에서 길을 잃게 한다. 호숫가로 돌아온 영양은 갇혀 있던 거북을 구해내 세 친구는 모두 무사히 도망갈 수 있었다. 사냥꾼에 비하면 세 동물은 모두 약한 존재지만 지혜를 모아 협동하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이 외에 우리나라에는 양과 관련한 설화도 전해지고 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꿈 이야기다. 초야에 묻혀 지내던 이성계가 양을 잡으려는데 양의 뿔과 꼬리가 몽땅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 이성계의 꿈 이야기를 들은 무학대사는 양(羊)이라는 한자에서 뿔과 꼬리가 떨어지면 왕(王)자만 남게 되니 임금이 될 것이라 해몽했다. 양 꿈을 꾼 이성계는 실제로 조선을 건국한 왕이 됐고, 그 이후 양 꿈은 길몽으로 해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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