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위원 시인

 
지난달 17일에 개봉된 영화 ‘국제시장’이 상영 18일 만에 700만 고지를 넘어섰다. 이런 추세라면 을미년에 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첫 영화로 기록될 성싶다. 부산 중구 신창동에 위치한 국제시장은 1945년 광복 후 전시 물자를 팔아 생계를 꾸려나갔던 상인들의 시장터로 자리 잡은 곳이다. 이곳은 한국전쟁 이후 피란민들이 장사하면서 한때 전성기를 누렸지만 대형 슈퍼마켓, 백화점 등 영향으로 불황기를 타는 재래시장 중 하나였으나 최근 활기를 되찾고 있다.

순전히 영화 ‘국제시장’의 흥행몰이 덕분이다. 이 영화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전국 관광객들의 행렬이 재래시장인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는데, 부산관광공사에서는 발 빠르게 이곳을 ‘원도심 근대역사 골목 투어’ 프로그램으로 엮어 영화 속 주인공인 덕수(황정민 분) 가게 ‘꽃분이네’는 기념사진 촬영 명소가 됐고, 덕수와 그의 아내 영자(김윤진 분)가 말다툼하다가 애국가가 흘러나오자 국기에 경례했던 용두산공원도 관광명소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다.

서민들의 삶의 터전이자 현재까지 서민들의 일상이 담겨있는 국제시장을 배경으로 한 영화 ‘국제시장’은 급격하게 변해온 시대를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영화 속에서 전개되는 흥남부두 철수, 서독 광부와 간호원 파견, 월남파병, 이산가족 찾기 등 내용은 한마디로 대한민국 변천사라 해도 좋을 테고, 그 파란만장한 세월 동안 주인공 덕수가 겪는 사연들은 가족을 위해 평생을 헌신해온 가장의 이야기로 다가와 관객들에게 가슴 뭉클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이 영화를 본 일부 정치인들과 극우파의 반응에서 제작진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보수의 영화’라느니 ‘힘들게 살아왔던 그때는 개인보다 국가를 먼저 생각했다’는 둥 보수 우파의 이데올로기로 연결 짓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온 부모님 세대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을 재조명하는 데 포인트를 둔 작품’이라 하겠으니 영화감독 역시 “정치성이 배제된 ‘아버지’에 대한 헌사(獻辭)”라고 밝힌 점에 주목해야 한다.

영화 속에서 전개된 대한민국 현대사의 에피소드 가운데 남북 이산가족 찾기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한 것도 이 장면이 아닌가 싶다. 필자도 생생히 기억하는바, 1983년 6월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의 주제곡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는 당시 전 국민의 심금을 울렸고, 흩어져 살며 그리워했던 가족들이 만나는 장면에서 시청자들은 제 형제 만난 것처럼 기뻐했고, 많은 사람들이 눈시울을 붉혔던 일도 이제는 30년 전의 일이 됐다.

당시만 해도 이산가족들이 다 만나게 되고 설령 통일은 아닐지라도 이산가족끼리 정기적인 상봉이나 서신 교환이 상시적으로 이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남북대화가 고착상태에 이르고 이산가족들의 상봉이 어쩌다 이어지고 있으니 남북으로 흩어져 사는 가족들의 아픔과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안타까움이 얼마나 크랴.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통일부 시스템에 등록된 인원이 6만 8867명으로 추산되고 있는바, 그중 반 정도(51.4%)가 80세 이상의 고령이라고 한다.

정초에 ‘국제시장’ 영화를 보고서 필자가 느낀 소회(所懷)는 아무리 남북한이 전쟁을 했었어도 최소한 이산가족의 한을 풀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절박한 심정이다. 분단 70년이라는 그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정부나 국제사회에서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노력이 어디 없었겠냐마는 그 세월이면 남북에 흩어져 사는 이산가족들의 상봉이 모두 끝나는 데 충분한 기간이기도 했다. 그 숙원이 우리 정부가 혼자 나선다고 될 일은 아니겠지만 이산가족 상봉이 완전히 끝맺음을 이루지 못한 것은 아무래도 국민의 가슴 속에 회한의 응어리로 남아 있음은 분명하다.

그런 가운데 분단 70년째인 을미년 새해 들어 좋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북한 당국자의 ‘남북대화를 못할 이유가 없다’는 말에 이어,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신년 인사회에서 통일 의지를 언급했다. “정부는 통일이 이상이나 꿈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로 구현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준비와 실천에 최선을 다해 나가겠다”는 내용인바, 평화통일 시대를 여는 일은 우리가 당면한 과업 중 시급하면서도 절실한 바람이기에 누구라도 쌍수 들어 환영할 일이다.

정부는 남북 당국 간 대화가 성사되면 이산가족 문제를 최우선 의제로 논의해 “이산가족 상봉뿐만 아니라 가족 전원의 생사확인과 서신왕래, 수시 상봉행사 개최 등을 북측에 제안하고 적극 추진할 방침”임을 밝혔다. 이야말로 새해 벽두에 들려온 희망가(希望歌)요, 70년 동안 기다려왔던 간절한 소망이라 할 것이다. 평화통일을 이뤄내기 위한 마중물은 아무래도 영화 속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노래로 상징되는 남북이산가족 찾기, 그 현장이 아니겠는가.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