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질서가 없고 왁자지껄하면, 도떼기시장 같다고 한다. 도떼기는 도매로 한꺼번에 왕창 물건을 산다는 뜻인데, 부산의 국제시장이 그 원조다. 부산에서는 자갈치시장이 대표적인 시장으로 유명하지만 국제시장도 그에 못지않다. 보세의류 등 각종 옷가지와 외제물건들이 넘쳐나,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만물시장이 국제시장이다. 깡통시장, 케네디시장은 국제시장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인근의 보수동 헌책방 골목도 부산에서 산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들렀음직한 추억의 장소다.

국제시장은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살던 곳이다. 서울의 명동처럼 어느 지역에나 일본인 거주지역이 따로 있었고 국제시장 터도 그랬다. 남의 나라에 와서 주인 행세를 한 일본놈들 생각하면 분통이 터지지만, 아무튼 그때는 그랬다. 해방이 되고 일본이 물러가자 도시 한복판이 텅 비어버렸고. 시장이 생겨났다. 6.25 전쟁이 터지자 전국의 피난민들이 부산으로 모여들었고 국제시장은 미군의 구호품과 군용품이 거래되는 전국에서 가장 큰 시장이 됐다.

국제시장이 외지 방문객들로 넘쳐나면서 그야말로 도떼기 분위기를 내고 있다고 한다. 영화 ‘국제시장’ 덕분이라는데, 시장이라면 사람들로 북적여야 하는 것이니, 반가운 일이다. 서울에서도 고속철도를 타면 반나절도 안 걸리니 서울 사는 사람들도 부산 나들이를 많이 하는 모양이다. 부산이 영화의 도시로 유명해지고 태종대나 자갈치시장 등 볼 것도 많고 재미있는 것도 많아 관광 코스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영화 ‘국제시장’을 보면서 우는 사람들이 많다. 대놓고 끅끅 우는 사람들도 있다.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이 운다. 영화 속 그 세월을 겪은 사람일수록 눈물이 더 나는 모양이다. 6.25를 겪지 않았어도 그 세월을 살았던 아버지나 어머니 삼촌 고모 생각 때문에 울기도 한다. 그 세월을 알 리 없는 아이들은, 우는 어른들이 어리둥절할 뿐이다. 어리둥절하지만, 옆에서 우니까 그냥 울기도 한다. 극장을 나서며, 울었네 안 울었네 하며 의미 없는 시비를 벌이기도 하지만, 아무튼 많이 운다.

‘국제시장’은 신파조다. 신파 하면, 이수일과 심순애가 등장하는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다. 신파(新派)라는 것도 일본에서 들어온 말이다. 전통 연극인 가부키에 대립되는 용어로 쓰인 것인데, 일제시대에 건너와 인기를 모았다. 해방이 되고 전쟁이 나면서 신파극도 사라졌지만, 신파조는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도 욕하면서도 본다는 TV 드라마도 신파조가 여전히 대세다. 뻔한 이야기임에도 사람들을 웃고 울리는 힘이 있다. 신파의 힘은 그런 것이다. ‘국제시장’도 신파조이고 그 때문에 사람들이 몰린다. 그게 이상할 건 없다.

감독도 신파를 작정하고 만들었지만 이념 논쟁은 피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박정희 대통령 부부가 서독의 광부들과 만나 애국가를 부르다 함께 우는 장면은 일부러 뺀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영화가 개봉되자 이념논쟁으로 비화됐다. 영화를 놓고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과하게 대립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인터넷 언론 등에서 누가 무슨 소리를 했네 하면서 생중계로 떠들어대니, 말 좀 한다는 사람들이 더욱 신바람을 내는 모양세다.

해도 바뀌고 했으니 그만 하자. 울 사람은 울고, 웃긴다 싶으면 웃기는구나, 하면 그만이다. 영화 말고도 우리가 의논하고 토론해야 할 정말 급한 것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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