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 서대문구 이화여대 부근의 한 편의점. 담배 사재기를 하는 사람들로 담배 진열대 곳곳이 텅 비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10보루 모으면 20만원
“발품파는 게 경제적 이득”
정부, 1인 1갑 구매만 가능?
암암리 거래는 단속 못해
지하경제 활성화 우려
“흡연자 건강 더 악화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손님 죄송합니다. 담배가 품절됐습니다.”

지난 25일 밤 7시 서울시 서대문구 이화여대 부근 한 편의점. 매장을 방문한 손님은 멈칫하며 당황해했다. “한 갑도 없나요? ㅇㅇ밖에 안 피우는데….”

점주는 텅 빈 진열대를 보여줬다. “담배가 요즘 안 들어와요. 그나마 있는 물품도 다 나가고. 저도 드리고 싶은데 더는 드릴 게 없어요.”

매장을 나간 김도윤(36)씨는 “평소엔 담배를 세 갑 이상 사서 모았다. 요즘엔 매장에 담배가 다 동나고 그나마 찾아도 한 갑 이상 안 판다”며 “그래도 10보루(100갑)만 사다 놓으면 20만원은 버니 직접 찾아다닐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인근의 또 다른 편의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진열장 곳곳엔 담배가 텅 비어 있었다. 그나마 남아 있는 건 비인기품목.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점원과 손님 간 실랑이가 빈번했다.

알바생은 “우리로선 담배를 한 갑밖에 판매하지 못한다. 그런데 ‘담배를 왜 못 사느냐, 어디 감춰둔 거 아니냐’ 윽박지르는 손님도 종종 있다”고 설명했다.

담뱃값 인상이 사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흡연자들의 담배 사재기 극성이 더욱 심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담배가격이 2000원 인상될 예정이기 때문. 그동안 2500원 하던 담배는 4500원에 판매된다. 이번 기회에 금연을 하려는 사람도 많지만, 끊을 자신이 없거나 오랜 기간 흡연을 한 사람들은 담배 사재기에 나섰다.

연말 담배 사재기가 극성을 부리자 정부는 1인 1갑만 구매하도록 제한했다. 또한 5만원권 상품권을 걸고 담배 유통업자들의 사재기 신고를 받고 있지만 석 달이 넘게 한 건도 접수되지 않은 상태다. 암암리에 담배가 다 판매되고 있는 것.

▲ 흡연자가 담배 피우고 있는 모습. (사진출처: 뉴시스)

익명을 요구한 한 점주는 “최소 2갑, 최대 1보루(10갑)를 찾는 손님도 있다”며 “품절된 상품은 어쩔 수 없지만 아직 재고가 있는 건 그냥 판매한다”며 “배낭 멘 채 옆 동네에서 담배 사러오는 손님이 있을 정도”라고 전했다.

담뱃값 인상으로 지하경제가 더 심해질 것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 2004년 12월 담뱃값이 2000원에서 2500원으로 인상한 이후 밀수 규모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인상 직후 2년간은 밀수입이 4배 이상 급증했다. 밀수 적발 액수는 2012년 32억원이었으나 지난해에는 437억원, 올해는 668억원으로 급증했다.

관세청은 내년부터 생산·유통·수출적재 등 전 과정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수시 재고조사를 하는 등 활동을 강화할 방침이다.

하지만 밀수입 단속을 완전히 차단하기는 어려울 거라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아이러브스모킹 이연익 대표는 “실제로 유럽에서 담배 가격이 대폭 올랐을 때 밀수입 담배가 시중에 많이 유통됐다”며 “우리나라는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저렴한 담배가 더 많이 들어올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밀수입된 담배에 어떤 성분이 들어있는지 전혀 모른다. 정부의 담뱃값 인상이 오히려 흡연자의 건강을 더 악화시키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흡연자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무조건 금연만 요구해서는 안 된다”며 “흡연공간을 만들거나, 흡연자를 위한 질병 치료 지원 등을 하는 게 올바른 금연정책”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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